나의 호의가 민폐로 받아들여지는 이유

10 6월, 2020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힘을 실어주는 수단이다.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하고 그 대가로 뭔가를 기대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폐를 끼친다. 하지만 이 피해가 항상 나쁜 의도는 아니었고, 어떤 호의는 그냥 엉망이 되었다.

‘favor’, 즉 호의를 뜻하는 이 단어는 “친절을 보여주다”라는 뜻의 ‘favere‘에서 왔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남을 돕고 자비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호의와 민폐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오늘의 글에서 나의 호의가 민폐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확인해보자.

처음에는 민폐를 단순한 장난이나 악의 없는 실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래에서 이에 관해 좀 더 깊이 탐구해 보자.

때때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이 있다. 그런 호의를 받으면, 누구라도 기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기만 하는 일부 현대인들은 이러한 타인의 호의를 악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충분히 감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호의가 생색과 피해로 변했을 때

호의와 감사 사이

감사의 부족은 인지 왜곡에 기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왜곡은 외향적인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보다 더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선택적 추상화나 필터링은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보다 더 적합하고 실존적이라고 믿게 만드는 사고의 왜곡이다.

하지만, 충분히 감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한 상황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당신이 싫어하는 상황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인생은 수학적으로 완벽한 알고리즘이 아니다. 따라서 처음에 당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행동이나 상황은 결국 당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결과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며, 이로 인해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에서, 정신적인 필터는 당신이 받는 정보나 당신이 창조하는 생각을 전달하는 다른 렌즈를 구성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대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만들어 낸다.

정신적 필터나 인지적 왜곡은 당신이 얼마나 감사한지 보여주는 중재자다. 당신이 요청했는지에 상관없이, ‘호의’에 얼마나 감사한가를 보여준다.

호의가 생색과 민폐로 변했을 때

다른 경우에서 그리고 나중에 놀랍게도, 일부 불건전한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은 장소에서 나타난다.

이런 상황들은 대개 생색내는 태도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제공되는 이익에 대해 전적으로 그리고 독점적으로 반응하도록 동기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어떤 호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생색내는 것은 우월감이 이득을 보는 사람에게 친절에 대한 오해와 맞닥뜨릴 때 발생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생색내려고 할 것이고 그것을 호의로 위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묻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는 해로운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비록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 도움이 되더라도, 어떤 제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이미 민폐가 발생했다면 다음과 같은 조처를 할 수 있다.

호의가 민폐로 변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다음 지침을 고려하자.

  • 변명하지 않는다. 먼저 상황의 원인을 파악한 후, 잘못이 없다면 탓하지 않는다.
  • 책임을 진다. 죄책감이 없다고 해서 책임을 피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당신이 받아들이는 것에도 책임이 있다.
  • 그 의도를 평가하고 놓아둔다. 호의 뒤에는 기대가 있는가.

당신은 결국 인간이고, 좋든 싫든 틀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휴머니즘은 연민과 용서의 문을 연다. 많은 호의를, 기대나 악의가 있는 사람들조차 무지에 기인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입니다.”

-누가복음 23:34-

이익에 관한 호의는 피해다

이익에 관한 호의는 민폐다

완벽한 호의는 받는 사람에게 사심 없고 선의의, 친절한 행동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호의가 반드시 상호 작용해야 하며 그 이면에 있는 동기도 공정하고 상호적이다.

따라서, 호의를 갚지 않으면 부정적인 결과와 함께 빚으로 남는다. 이것은 이미 받은 사람에게 해롭다. 더구나 때로는 상호작용이 부족하여 받은 사람이 열등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

호의와 빚에 대한 환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특히 ‘관대한 영혼’이 대가를 받지 못하면 부정적인 감정이나 원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호의는 사회적 관념에 있어서 이타적이고 사심이 없다. 그러나 남에게 필요하지 않은 호의는 생색내는 태도로 변질할 가능성이 높다.

보답을 바라고 보인 호의는 진정한 호의가 아니다.

호의라는 원래 개념은 즉각적인 상호보상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민폐로 바뀌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이타적이고 그 보답으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언젠가, 어떻게든,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똑같이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Festinger, L. (1975). Teoría de la disonancia cognoscitiva. Instituto de Estudios Polític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