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의 생애

04 7월, 2020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한 사람이 가족사에 의해 어떻게 갇혀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주의 세계에서 존경을 받고 자본주의를 미워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같은 정치의 낙인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아마도 무시무시했던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의 마음을 녹인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일은 알릴루예바가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 일어났다. 물론, 그녀는 자신과 함께 놀아주었던 사랑스러운 사람과 자신의 영토에서 공포감을 심어주었던 러시아의 지도자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여성은 당시 소비에트 연방을 떠나 미국에 망명을 요청했던 60년대 당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나라는 아버지를 가장 반대했던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유명한 냉전에 관한 선전상으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그녀의 모습을 사용하여 그녀의 아버지가 이끌었던 정권의 신빙성을 없앴다.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가 경험한 고통과 모순은 왜 그녀가 여러 번 이름을 바꾸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녀는 스베틀라나 이오시포브나 스탈린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성을 바꾸고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이름의 사용을 중단하고 결국 라나 피터스(Lana Peters)가 되었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의 생애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의 역설적인 어린 시절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유일한 딸이었다.

그는 스베틀라나의 어머니인 나데즈다 알릴루예바(Nadezhda Alliluyeva)에게서 두 명의 다른 아들을 낳았다.

스탈린의 삶을 연구한 전기학자들은 단 세 사람만이 이 지도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들 중 한 명은 그의 어머니 예카테리나 구엘라제(Yekaterina Gueladze)였다.

그의 마음을 녹인 또 다른 사람은 그의 첫 번째 부인 예카테리나 스바니드제(Ekaterina Svanidze)였다. 그는 실제로 그녀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결핵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일부 사람들은 스탈린이 예카테리나를 잃은 후 결코 이전과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그가 마지막으로 정말 사랑했던 사람은 그의 딸 스베틀라나였다. 그녀는 매일 그녀를 다독여 주던 사람이 러시아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모스크바 크렘린 내에서 마치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이처럼 상아탑에서 살면서 외부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완전히 무시했다. 스베틀라나는 베이비 시터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항상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실제로 스베틀라나의 어머니는 가장 멀리 있는 듯 보였다.

어머니의 부재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가 6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공식 소식통에 따르면 그녀는 치명적인 충수염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이는 항상 수수께끼였지만, 스베틀라나의 어머니인 나디아의 죽음이 자연스럽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그녀는 스탈린과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녀가 대학에 가기 위해 떠났을 때, 그녀는 그가 러시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 실망했다.

나디아는 스탈린의 얼굴에 대고 “사형 집행인”이라고 외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죽기 전날, 그녀는 그 지도자와 가혹한 공개 토론을 했다. 그가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폭력적이었음을 주장하는 진술도 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발견되었을 때 그녀는 가슴에 총알이 박힌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그녀가 자살했다고 믿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스탈린이 그녀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베틀라나는 공식 견해를 믿도록 강요받았다.

어머니의 부재

슬픈 각성

자라면서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그녀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녀가 여태껏 믿어왔던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16살이 될 때까지는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당시 스베틀라나는 이미 영어를 배운 상태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영어로 된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그 기사는 그녀의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실은 그때까지 그녀에게 사랑스러운 아버지였던 사람에 대한 엄청난 불일치를 일으켰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졌고, 스탈린은 이 관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끝내기 위해, 그는 일부 사람들에게 그를 체포하고 시베리아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19살이 되었을 때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마도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해 이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는 4번의 짧은 결혼 생활 중 첫 번째 결혼이었으며, 이 결혼으로 그녀는 두 명의 딸을 얻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녀는 그 지도자의 사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항상 모호했는데,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했다. 약 14년 후, 그녀는 홀로 인도를 여행했다. 그녀는 19살과 16살이 된 아이들을 혼자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1967년 4월 미국에 도착하여 그녀는 작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서전에 대한 대가로 3백만 달러를 지불받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결혼하여 딸 올가를 낳았다. 스베틀라나는 지난 이혼과 그녀를 따라다니던 정치적 그림자로 인해 1991년 자살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2011년 암으로 사망했고, 사망한 후에는 자신을 러시아로 옮기지 말아 달라고 모든 사람에게 부탁했다.

Cardín, A. (1983). Moscú sí cree en las fiestas. Los Cuadernos del Norte: Revista cultural de la Caja de Ahorros de Asturias, 4(20), 2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