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버릇 없게 만드는 것과 무능하게 만드는 것의 차이
아이를 버릇 없게 만드는 것과 무능하게 만드는 것의 차이를 알고 있는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고, 우리는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른다.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사용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이 욕망을 실현하려 할 때, 우리는 자주 모순에 부딪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우리가 노력할수록, 성취하는 것이 더 적다는 것이다. 또한 버릇 없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주로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가 “피곤하게 태어났다”고 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람 시계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듯 하다. 알람이 몇 분이고 계속해서 울려도, 그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들은 몇 번이고 아이들에게 일어나서 학교를 가야 한다고 소리친다.
“여유로움의 삶과 게으름의 삶은 다른 것이다. 무덤에 들어가면 충분히 잘 수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
아이를 버릇 없게 만드는 부모들
많은 부모들이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결과에 갇혀 버린다.
어쩌면 그들이 아이들과 맞서고 싶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그럴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은 그저 그 짐을 지고 가기로 결심하고, 좀 더 관대해짐으로써 스스로의 기분을 달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들은 더욱 버릇이 없어지는 것이다.
현실은 오늘날의 많은 아이들이 극도로 게으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침대를 정리하지도 않고,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리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너무 어리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상당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상황일 수도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내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어떤 일들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부모가 생각하기에,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힘든 상황이 아이들이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에게 그것을 하라고 요구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인생을 이상화하고, “천국 같은” 곳이라고 믿게 만들고 싶어한다. 그것이 바로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살기를 바라는 세상이다, 다채로운 색깔의 천국. 그곳에서 아이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자라기를 바란다.
그들의 집은 “모든 것이 포함된 리조트” 같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고 갖추어진, 아이들은 심지어 “자신의 물건”을 관리할 필요도 없다. 뜨거운 음식이 바로 코 앞에 준비되고, 침대는 항상 보송보송하고 깨끗하다. 그리고, 이것이 버릇 없는 아이를 만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요구”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이다 – 요구하는 것. 이것이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해야 하는 유일한 고생이다.
“아이들의 자존감에 도움이 되는데, 어떻게 가장 좋은 휴대 전화를 안 사줄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옷을 사주지 않을 수가 있어? 나는 내 아이가 가난하게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내 아이를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생각은 자주 재앙으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문제나 우리의 한계에 대한 보상 심리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를 사랑으로만 교육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이들은 충만한 삶과 게으르지 않은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누가 누구의 책임인가?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버릇 없는 아이를 두려워한다. 그들의 공포는 정당화되었다. 특히 서양의 모든 국가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신체적 폭력을 사용하는 수치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어디는 좀 더 수치가 높고, 어디는 좀 더 낮지만, 일반적으로 그 퍼센트는 이미 두 자리 수가 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를 신체적으로 괴롭힌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괴롭힌다. 사회의 큰 부분이 “버릇 없는 아이들”에 의해 괴롭혀지고 있는 듯하다.
먼저,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상의를 하지 않고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도 한다. 질문을 해야 한다 – 그들의 의견을 듣거나… 그들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가?
부모는 조부모의 집으로 휴가를 가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아이는 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부모는 사전에 그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아이에게 먼저 의견을 묻는다. 아이의 반응과 그 반응이 어떤 피해로 이어질지 두려워한다.
버릇 없는 아이 만들기
이런 방식의 양육의 결과는 기본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런 버릇 없는 아이들은 게으르고, 근거 없이 건방지며, 편협하고 이기적이 된다. 엄마나 아빠가 자신의 자녀 주변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 딱 그런 아이가 되는 것이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삶을 사는 그런 인간이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 할머니, 할아버지는 “회초리”를 사용했다. 아이들을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꼭 엄격할 필요는 없지만, 과도한 관대함보다는 엄격함이 좀 더 책임감 있는 인간을 키우는 길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과도한 관대함은 아이가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 결정을 하는 것은 엄마나 아빠라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집안 일을 시키고, 만약이나 하지만 이라는 변명을 하지 않는 책임감 있는 아이로 키워내야 한다. 학대하는 부모는 소심한 아이를 키운다. 관대하고 복종하는 부모는 쓸모 없는 아이를 만들어 낸다. 애정을 가지고 확실한 경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부모가 강한 아이를 키운다. 약한 부모는 버릇 없는 아이로 만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