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세네카: 한 철학자의 생애

29 12월, 2019
소 세네카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인간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가였다. 비록 그가 행동으로 옮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전파했지만 철학과 윤리에 관한 그의 작품은 매우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소 세네카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영감을 주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윤리학을 돌아본 철학자로서 역사에 남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퇴폐적인 시대 중에서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려고 했다.

역사상의 다른 위대한 인물들과 같이, 소 세네카는 열렬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다른 과학, 문화 및 신념에 완전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로마와 그리스 문화를 연구할 때와 같은 열정으로 이집트 문화를 공부했다. 마침내 그는 스토아학파를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 한명이 되었다.

역사와 권력의 위대한 역설 중 하나는 세네카가 그의 상대편이 될 인물 즉, 네로 황제의 선생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가 결국 그에게 사형을 선고를 내리게 된다.

고대 로마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많은 문학적, 철학적 작품을 남겼다. 라틴어로 쓰인 모든 글 중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은 아주 적은 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네카처럼 전해야만 했던 것들이 있었던 흥미로운 저자들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글에서는 고전 시대의 가장 훌륭한 사상가 중 한 명에 대한 탐구에 초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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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세네카의 어린 시절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를 정황을 살펴보면 기원전 4년에 세네카가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천식을 극심하게 앓는 아픈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의 법무 장관이자 유명한 연설가 및 수사학자였다.

이 위대한 철학자의 삶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두 명의 형제가 있다는 것이다. 세네카와 함께 두 명 모두 VIP였다. 비극적 이게도 그들은 다른 시점에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세네카는 로마에 있는 어머니의 이복 언니 슬하에서 거의 대부분 시간 동안 길러졌다. 또한 이 입양 가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에서 살면서 이집트 문화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다양한 과학과 지식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 후 그는 아테네에서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일부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힘과 밝기

서기 31년에 세네카는 로마 치안 판사가 되었다. 그는 훌륭하게 일을 해냈고 몇 년 후 상원의 주요 연사가 되었다. 그때쯤에 악랄한 칼리굴라가 왕위에 올라 있었다. 그는 실제로 세네카를 질투했고 결과적으로도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선고했다. 당연하게도, 한 매춘부가 그에게 이를 집행하지 말도록 설득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의 첫 번째 아내 메살리나가 그를 한 번 더 사형 선고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추방되었다. 따라서 세네카는 8년 동안 머물렀던 코르시카섬으로 떠나게 된다.

그 후 클라우디우스의 두 번째 아내인 아그리피나는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선다. 또한 그녀는 그가 그녀의 남편을 도와 그녀의 위신을 살려줄 동맹으로서 바라보았다. 게다가 그녀는 세네카가 그녀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다. 바로, 네로가 클라우디우스의 정통은 아니었지만 그를 황제로 세우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그의 제자였던 네로 황제

결국 아그리피나의 계획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클라우디우스가 죽었을 때 네로는 17살 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세네카는 정치 고문이자 장관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는 네로의 고문 중 한 명인 섹스토 아프라니오 부로와 함께 향후 8년간 제국을 통치 한 사람이었다.

네로는 자문관과 교사에게 큰 존경심을 보였다. 또한, 철학자의 손에 있던 권력은 제국을 안정적이고 번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젊은 황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멘토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세네카는 스토아의 윤리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그는 다른 시대의 권력자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로 인해 다양한 음모의 결과로 네로는 그를 잠재적인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는 그가 위선자이며 자신의 어머니의 연인이라고 몰아세웠다.

세네카

소 세네카의 죽음

세네카의 인생에서 가장 모순되고 유감스러운 사건 중 하나는 네로가 어머니를 살해 한 순간이었다. 이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세네카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그는 황제를 두려워했으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만 신경썼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 후 부로가 죽고 세네카는 실제로 홀로 남겨지게 된다. 그는 네로의 호의를 얻기 위해 모든 부와 물품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황제에게 공적인 삶에서 물러날 수 있는 허가를 요청했다. 적어도 그가 느낀 위험에 대해 이렇게 글로 남겼다. 세네카는 자신의 목숨에 대한 위태로움을 느꼈고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살고자 했다.

그러나 네로는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기 위한 변명으로 자신을 향한 음모에 그를 연루시켰다. 그 당시에 사형선고가 귀족에게 내려지면 자결을 해야만 했다. 세네카는 아내와 함께 이 규율과 전통을 따랐다. 그의 죽음 이후에 그의 형제들과 조카 또한 네로의 잔인함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서 자결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이 위대한 사상가의 삶이 비극적이고 심지어 불공평하게 끝을 맞이하게 된다.

  • Zambrano, M., & Seneca, L. A. (1987). El pensamiento vivo de Séneca. Cáted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