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다지 (Saudade): 이 포르투갈 단어가 갖는 감정의 의미

2018-04-12

사우다지 (Saudade)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비어 있는 공허함이자 그리움이다. 우리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을, 마음의 화염이다. 우리의 집에 관한 기억을 일깨우는 따뜻한 바람, 또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우울한 느낌일 수도 있다.

사우다지는 부재의 존재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이나 무언가에 대한 열망은 아마도 과거에만 남아있을 것이다. 슬픔과 애정이 섞인, 그 심오한 감정. 우리가 희망을 유지할지라도, 결국에는 오지 않을 무언가의 달콤씁쓸한 맛으로, 우리를 떠나게만든다.

“멀리 사는 형제를 위한 Saudade.
어린 시절의 폭포를 위한 Saudade.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과일의 맛을 위한 Saudade.
죽은 아버지를 위한 Saudade, 결코 존재하지 않은 상상의 친구를위한…도시를 위한 Saudade.
우리가 그 시간을 볼 때, 우리 자신을 위한 Saudade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 모든 Saudades가 상처가 된다.
그러나 가장 큰 상처를 입힌 Saudade는, 바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 미겔 팔라벨라

사우다지 (Saudade): 아주 강력한 단어

영어의 그 어떤 단어도 아픈 행복한 기억에서 오는 매우 특별한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하지만 이 포르투갈 어에는 그것이 존재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말, 사우다지(Saudade)로 이 그리움과 슬픔을 표현한다신비한 단어이며, 모든 슬픔을 포함하는 것이다.

많은 언어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감정을 연구하여,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사우다지(Saudade)

이 단정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이 말은, 감정과 기분의 모든 면모를 포괄하고 있다그들은 현재의 감정을 통해 멀리 있는 것을 떠올린다. 본질적으로, 이 방법처럼, 포르투갈의 작가, 마누엘 멜로도, 이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bem que se padece i mal que se disfruta’  (우리가 고통으로 여기는 선함, 그리고 우리가 즐기는 악함).

또한 이 개념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철학자 라몬 피녜로는 이 용어를 외로움에서 비롯된 정신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다양한 종류의 외로움은 다양한 종류의 사우다지(Saudade)를 유발시킬 수 있다. 우리가 처한 환경(객관적)과 사적인(주관적)경험들을 빗대어 볼 수 있다.

사우다지(Saudade)에 대한 다른 설명으로는, 인간의 기본적인 안정적인 감각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와 관련지는 시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노보아 산토스(Novoa Santos)의사가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죽음의 본능’을 통해, 또는 감정적 각성을 통해, 우리는 새로이 태어나게 된다. 이 단어의 의미는 너무나 광범위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심리적 인 상태라는 것에 모두 동의할 수 있다.

향수를 넘어서

사람들은 때때로 사우다지(Saudade)를 향수로 인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단어의 향기는 향수병이라는 개념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단지 뭔가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인생의 순간이 우리 삶에서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리 안에서는, 아무것도 같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말했듯이, 이 말은 우리 의식의 해변에서 파도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것임 을 암시하고 있다. 폭풍우가 치는 바다처럼, 우리의 내부 세계가 넘쳐서, 부재의 공허감이 존재감을 얻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결코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시절의 우리의  두 눈을 기억해낸다. 혹은, 우리가 다시 만지지 못할 감촉, 자란 곳의 냄새, 우리가 어린 시절에 했던 뒷마당에서의 작은 놀이들…. 우리가 태양을 보는 동안, 이 모든 것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사우다지(Saudade)는 기억의 행복과 결핍의 슬픔이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작가이자 배우인 미겔 팔라 벨라가 말했듯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우다지(Saudade)는 우리가 여전히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그리움과 슬픔일 것이다. 우리가 다시는 같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공허함과 연관시키는 우리 자신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슬픈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만지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기억하곤 한다.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사랑의 방식인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saudade는,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 슬픔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피부, 그들의 냄새, 그들과의 키스. 그들의 존재와, 그리고 이제 어쩔 수 없는 그들의 부재까지.” – 미겔 팔라벨라 

달콤 씁쓸한 기억의 맛을 줄이며

사우다지(Saudade), 그것은 확실히 아프다. 그러나 그 일면에는 행복이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슬픔을 느낄 때, 우리의 감정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기억하고 슬픔을 느낀다. 동시에 우리는 행복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기억의 가장 애통한면을 맛보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역설적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위안이 된다.

“사우다지(Saudade)는 내가 글쓰기를하는 동안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독서를 마친 후에, 아마도 당신이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미겔 팔라벨라 

특히,  사우다지(Saudade)는 우리 몸의 모든 원자와 함께 생명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법도 알게 해준다. 모든 순간, 모든 세부 사항, 모든 사람…. 이들 모두는 고통과 행복 사이의 이 독특한 감정을, 우리 안에서 깨울 수 있다.

당신은 어떤가, 그 슬픔을, 그리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