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귀를 기울이면 그 슬픔이 사라진다

17 4월, 2018

슬픔에 귀를 기울이면 그 슬픔이 사라진다. 우리의 몸을 통해, 슬픔을 골고루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의 마음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 속의 흐림을 제거하려는 것이, 헛된 몸부림이라고 단정짓는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생각에 자리잡아, 뿌리를 뻗어 커지게 될 것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인공적인 ‘의무감’을 알려준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웃음은 좋은 것이라고 사회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쁨의 신호라는 것이다. 그러나, 웃음이 너무 귀에 거슬리거나, 너무나 약해지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 의한 것이거나 자제력 부족으로 생겨난, 원하지 않는, 짜증나는 조소가 되어버린다.

만일 이것이 긍정적인 감정을 위한  방법이라면, 부정적인 것들 (울음, 우울함)은 엄격히 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한은 극단적인 것으로, 아무도 주변에 없는 우리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더라도, 이러한 외로운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슬퍼하고, 망가지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언제나 명랑하게 있을 수는 없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울부짖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인간인 것이 좋은 것이니까.” – 미상
슬픔에 귀를 기울이면 그 슬픔이 사라진다

왜 슬픔이 당신에게 자리잡게 된 것일까?

슬픔은 정리 해고, 이별, 재정적 손실, 예기치 못한 질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이다. 우리가 믿기를 원하는 것보다 더 일반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가 감정을 잘 관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즉, 무지 또는 고의적 거부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관리하지 않으면 감정이 사라지고, 우울감의 뿌리가 더더욱 깊어진다.

이것이 슬픔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우리가 실제로 슬픔을 두 눈으로 관찰할 수 없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려 한 것인지 알아내지 못하면, 슬픔은 영원히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아 버릴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 이별 후 나타나는 슬픔은, 슬픔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그것을 느끼고, 경험하면, 우리가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
  • 질병으로 인한 슬픔은, 그 슬픔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취약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천천히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 재정적 손실에 직면했을 때, 슬픔은 우리의 선택을 고려하기 위해 잠시 멈출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전에 볼 수 없었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슬프다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멈추고, 잠시 주변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슬픔은 우리가 이전에 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기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슬픔이 완전히 우리를 소비해 버렸다면, 우리가 우울증에서 한발짝 나아가고, 스스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슬픈 영혼은 어떤 세균보다도, 당신을 더 빨리 죽일 수 있다.”- 존 스타인벡
물 속의 여자

슬픔을 떨쳐 버리는 똑똑한 방법

모든 슬픔을 몰아내고, 우리가 찡그린 얼굴을 하지 않고, 미소릴 지으며 일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인생 전반을 지배하는 슬픔을 몰아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전략을 구현시켜야 한다.

그 중 주요한 것들은, 울음이나 내성과 같은, 슬픔과 그 징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슬픔을 애써 유지하거나, 거부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우리는 슬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는 훌쩍여도, 울부짖어도, 그저 울어도 상관 없다. 가끔은 그런 울음들이 필요하다. 정서적 카타르시스는 우리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벽을 세우면 작동하지 않는다.

울음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온다. 일종의 자기 관리이다. 당신이 떠날 수 없는 슬픔으로 극복한다고 느끼면, 그 후 자신을 돌볼 더 많은 방법을 찾으면 된다. 운동을 하거나, 건강하게 먹거나, 친구들과 나가 노는 것도 좋다. 즉, 모든 것이 사라지는 절망스러운 상황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슬픔에 귀를 기울이면 그 슬픔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가능한 결과에 관계없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내면적인 동기, 즉 욕구를 찾는 것이 좋다. 우리의 의미, 예를 들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 우리는 여전히 그 동기를 찾아, 고난을 통과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마음 챙기기 등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아주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또는 우리가 그 고통에 의해 너무 파괴되고, 기분 전환을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엔, 전문가를 보는 것이 모든 것을 위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비록 당신의 상황이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강렬한 태풍도, 언젠가는 끝나고, 밝은 태양이 다시 비추게 될 것이다.

“구름이 더 이상 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비가 내린다. 심장이 더 이상 고통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눈물이 떨어진다.” –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