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과거로부터 구하고 싶은 적이 있는가?

10 6월, 2020

스스로를 과거로부터 구하고 싶은 적이 있는가? 과거로 돌아가 그 때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적 말이다. 비록 현재와는 상관 없을 과거일지라도. 혹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이 감정은 인간이 본래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감정적 기억은 우리에게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는 과거의 모습과 평화롭게 지내고,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하고, 스스로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한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과거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살아남기 위해 과거로부터 어떤 것도 구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지고 있는 짐을 갖고 계속 앞으로 헤엄쳐 나가야 한다.

아마도 우리의 배낭은 우리가 과거에 배운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혹은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고 위협하는 돌들로 채워져 있을 수도 있다. “…를 했어야 했는데”와 같은 후회로 된 돌 말이다.

과거를 밝히려고 노력해봐야, 막다른 길 뿐이다

과거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매일 우리는 위험 속에서 살고, 실수를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배운다. 비록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어도, 실수가 우리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뺏도록 둬서는 안된다.

우리가 과거의 흠집을 실로 꿰매려고 할 때, 더 엉키기 마련이다. 일부 실은 연결되고, 다른 실은 이미 달성한 것을 되돌려버릴 것이다. 그저 계속 꿰매는게 나을 수도 있다.

구멍에서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욱 더 깊게 파고들 것이다. 매듭을 풀려고 하면 함정에 빠질 것이다. 우리의 과거의 이야기는 결코 지울 수 없다.

과거로부터 배움: 스스로를 과거로부터 구하고 싶은 적이 있는가?

구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땅을 파고 판다고 상상해 보자. 이는 마치 우리가 과거로부터 답을 얻으려는 시도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를 발굴하기 위한 완벽한 도구를 고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지금처럼 평화로운 상태에서는 과거에 왜 그렇게 헤맸는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그 때 우리에게 평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찾고, 스스로를 과거로부터 구하는 것

살아가면서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두 가지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 만약 다시 과거의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기 위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회복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현재를 개선하기 위해 과거의 것을 명확히 하고 싶어 한다.
  • 만약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거나, 우리에게 잘못한 누군가를 해치려고 한다면, 이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소녀 종이배

우리는 과거로부터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미 시간이 지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삽질을 멈추고, 이제는 씨앗을 심고, 토양을 가꾸고, 물을 주어 열매를 맺어라.

단지 본인의 자아 때문에 과거로부터 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인해 현재를 망칠 수 있다. 파는 것을 멈추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키우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