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인 연애를 피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실수들

2018-01-16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은 단지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피상적인 연애를 즐기는 일종의 오락이나 다름 없다. 이 오락에는 관계를 무너지게 할 수 있는 버튼이 존재하고, 이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 물론 사랑을 갖고 노는 사람은 언젠가는 벌을 받겠지만 말이다. 이것이 모든 피상적인 관계의 현실이다.

피상적인 연애를 피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실수들

“액체 관계는 항상 물을 흡수한다.”
-제니퍼 델가도(Jennifer Delgado)-

아마도 관계가 불안정한 이유는 공식적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견고한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시작하기도 전에 관계가 끝날 때도 있다. 따라서 초반부터 지레 겁먹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물론 이름은 사물을 국한시키고 제한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연인으로서 삶을 공유하고 있다면 둘 사이를 명료하게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 만약 애인과의 관계를 명확히하기를 거부한다면 둘 다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우리가 애인 사이가 맞는가? 그저 친구는 아닌가?

따로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막연하게 흘러가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진지하게 서로만 사귀는 사이인지, 여러 사람을 번갈아가며 만나도 괜찮은 사이인지를 명확히해야한다. 둘의 의견이 다를 경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춤추는 커플: 피상적인 연애를 피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실수들

이런 경우 자신의 인간관계에 꼬리표가 달렸다는 기분에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 사이를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한다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오해의 소지가 생긴다.

필요할 때만 찾는 것

사람들은 저마다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치 사물처럼 다뤄서는 안된다. 타인은 우리가 원할 때,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타인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들을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갈등은 비명료함에서 발생한다.”
-알베르트 카무스(Albert Camus)-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은 그런 경험이 있는가? 필요할 때만 누군가를 찾아본 적이 있는가? 이런 종류의 관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존감을 약화시키고, 열등감을 유발한다. 사람을 단순한 도구로 간주하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자물쇠 커플

자부심이나 정서적 의존도가 낮아서 금방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더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 누구도 이용당할 순 없고, 누구나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이용당하는 물체가 아닌, 사람임을 기억해라.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

성적인 욕구만 채우는 친구 관계가 유행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유행을 쫓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 이런 관계였을까? 아마도 그 중 대부분은 이런 관계를 원치도 않았는데 어쩌다 말려들었을 것이다. 아마 보수적인 ‘사랑’이라는 관계를 피하다보니 그런 상황에 빠진게 분명하다. 사실 그런게 아닌데 말이다.

뛰는 커플

관계에 선을 긋지 못한다면 마치 게임이 되어버린다. 초반에는 불을 끌새도 없이 게임을 즐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관계는 망가진다. 메시지를 보내지만, 일부러 감칠맛을 위해 적당히 늦게 답장하는 관계다. 이는 자신에 대한 미스터리함을 유지하고 더 관심을 갖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관계란 여전히 막연한 협박과 우울한 예감으로 가득하다: 이는 함께라는 기쁨과 동시에 집착이라는 공포를 의미한다. 아마도 이것이 사람들이 ‘커플’보다는 ‘관계’에 대해 더 많이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그문트 보먼(Zygmunt Bauman)-

사실은 요즘 연결 고리, 관계가 참 많이 희미해졌다. 사랑에 대한 개념이 변했거나, 이전의 사랑이라는 개념이 어떤 방식에 인해 파괴되어 새로운 개념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부간의 의사소통의 부재를 비판해왔지만, 이제는 관계의 정의의 부재를 옹호한다. 명칭의 부재는 우리를 혼란스럽고 정처없이 길을 잃게 만들 뿐이다. 사람은 원래 원치 않은 것은 명확하지만,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기꺼이 협상하고자 하는 의지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우리는 ‘공허함’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바꾸었다. 무해해 보이는 공허함은 혼란과 정신적 충격의 원인이 된다. 이는 우리가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로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