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문법 실수: 맨 마지막에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하는 것
우리가 글을 쓸 때 범하는 최악의 실수는,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이 반복하는, 마무리를 맺을 때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한 시기를 어떻게 마무리할 지, 인간 관계를 어떻게 마무리할 지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끝까지 싸우려 하니까.”
우리의 실수: 완전히 멈추어야 할 때, 여전히 줄임표로 이어가려 한다
우리가 계속 말줄임표 쓰듯이 억지로 관계를 질질 끌고 가는 오랜 버릇은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우리가 창문을 열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밝은 빛을 보지 못한다; 우리가 문을 열어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놓아준다는’ 무력감의 늪으로 빠져버릴 것이다. 그리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갑갑해질 것이다.
거친 세상, 그리고 비유적으로 말하건대, 우리의 관자놀이에 겨누어진 총구를 꾸준히 느끼며, 우리는 만족스럽고 감정적인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인간의 ‘거부권’이 매우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은,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과 현실을 마주할 때 느끼는, 우리의 무력감이 반영된 결과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곤 한다.
만일 무언가가, 어떤 관계가 소용이 없거나 하여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왜 그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려 하는가?
현실 감각을 찾자: 우리가 원한다면 받아들이고, 싫어한다면, 놓아주자
“놓아주기”. “보내주기”, “작별하기”… 이 모두가 바로 강렬한 문구들이다. 한 마디의 경구에 지나지 않는 말들이지만, 이들은, 우리가 우리의 목표를 위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말들이다.
당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곳에 억지로 가려 하지도 말고, 원하지 않는 곳에도 억지로 있지 마라. 당신이 만일 이를 인지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적 욕구의 가치를 재고, 우리의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설령 이것이 우리의 일상을 떠나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과 창문을 열어놓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경우에서 찾아오는 해로운 관계에 확실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며, 우리의 감정을 우선시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이것은 어렵고, 슬픈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적절히 마무리짓지 못한다면, 더 놀랍고, 아름답고, 새로운 이야기를 더 써내려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마라:
“어딘가를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를 위한 것.
어떤 사람들에게서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것.
문을 잠시 닫는 것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