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은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 2018-11-01

연인, 어린 시절의 부모 혹은 사회로부터의 무관심은 본래 정서와 안정감을 키우는 데 필요한 뿌리이자 유대관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긴다.

사실 무관심은 물리적인 부재 뿐 아니라 더 많은 경우 흥미 없음, 관심 부족, 냉정함이 뒤따르는 정신적인 부재다. 이는 아이들도 인식할 수 있고, 성인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관심의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무관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무관심으로 인해 사람은 내면의 일부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이는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되는 경험이다.

어릴 적부터 무관심을 받으면 그 정신적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비록 아이들은 저마다 반응이 다르지만, 보통 트라우마를 남기고 이런 트라우마를 지닌 기억은 시간이 아닌, 제대로 된 해결책으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주 사적인 투쟁이기도 하다.

무관심은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무관심은 부재로 가득한 물을 가로지르는 떠돌이 배

무관심의 감정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예를 들어 실직을 했지만 다음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할 때, 우리는 마치 엄마에게 버림받은 어린 아이, 혹은 일을 마치고 집을 왔을 때 아내가 떠났음을 깨달은 남자처럼 버림받은 기분을 느낀다.

무관심을 느낀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Abandonment.net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는 각자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치유의 효과를 제공한다. 아주 어릴 때 겪었던 부모의 죽음, 알콜 중독의 부모, 혹은 부모가 있었지만 혼자서 자랐던 기억 등의 트라우마가 치유의 핵심이다.

어릴 적 겪었던 무관심의 기억을 이겨내는 일은 전문가들이 그것을 제2의 탄생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충족되었어야 했던 마음, 감정, 욕구를 채우고, 나 자신을 연결해주는 탯줄을 자르는 고통을 겪은 뒤 다시 사랑받고 스스로를 가치있다고 여길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야” 한다.

무관심은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정서적 무관심으로 인한 결과

트라우마적 경험으로 인한 결과에 관해서는 아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일정하고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대략 일반화할 수 있다.

  • 어릴 적 무관심을 겪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다. 어른이 되어도 그 사람은 의심이 많고, 자격지심이 있고,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분노나 슬픔과 같은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워한다.
  • 연인이나 사회로부터 무관심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가 행복하거나 사랑 받을 자격이 없으며, 무능하고 해낼 수 있는 것이 없어 꿈을 쫓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자기 파괴적”인 생각들을 하는 경향이 있다.
  • 남으로부터 인정과 관심을 필요 로하는 의존증 역시 문제로 부상한다. 보통 주는 만큼 받지 못하고, 남에게 너무 많이 베풀어버리고 끝나곤 한다.
  • “감정적 회상”으로부터 고통을 받기도 한다. 살다 보면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물이 한때 자신이 받았던 무관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몸이 굳어버리곤 한다.

이 모든 것은 이전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들이고 해결되어야 한다. 

무관심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법

마치 풍선을 놓아주는 사람처럼,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자존감을 더 신경쓰고,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치유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말처럼 쉽지 않다.

  •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은 어릴 적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이 요법은 마음과 몸을 열어 제대로 된 정서적 해소를 가능하게 한다.
  •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감정적 욕구를 소통하는 일의 중요성을 전파한다. 입 밖으로 하는 대화를 통해 상처입은 사람들이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로 인해 더 확실한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스스로를 돌보고, 분노와 증오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 등은 과거의 상처에 구속되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과거의 슬픔을 지울 수는 없지만 마치 흘러가는 개울을 보는 것처럼 마음의 평안감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일은 비록 차갑고 어두운 면이 기저에 있더라도, 마치 흘러가는 깨끗한 물처럼, 그저 나타날 뿐이다. 우리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