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은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연인, 어린 시절의 부모 혹은 사회로부터의 무관심은 본래 정서와 안정감을 키우는 데 필요한 뿌리이자 유대관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긴다.
사실 무관심은 물리적인 부재 뿐 아니라 더 많은 경우 흥미 없음, 관심 부족, 냉정함이 뒤따르는 정신적인 부재다. 이는 아이들도 인식할 수 있고, 성인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관심의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무관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무관심으로 인해 사람은 내면의 일부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이는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되는 경험이다.
어릴 적부터 무관심을 받으면 그 정신적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비록 아이들은 저마다 반응이 다르지만, 보통 트라우마를 남기고 이런 트라우마를 지닌 기억은 시간이 아닌, 제대로 된 해결책으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주 사적인 투쟁이기도 하다.
무관심은 부재로 가득한 물을 가로지르는 떠돌이 배
무관심의 감정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예를 들어 실직을 했지만 다음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할 때, 우리는 마치 엄마에게 버림받은 어린 아이, 혹은 일을 마치고 집을 왔을 때 아내가 떠났음을 깨달은 남자처럼 버림받은 기분을 느낀다.
무관심을 느낀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Abandonment.net 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는 각자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치유의 효과를 제공한다. 아주 어릴 때 겪었던 부모의 죽음, 알콜 중독의 부모, 혹은 부모가 있었지만 혼자서 자랐던 기억 등의 트라우마가 치유의 핵심이다.
어릴 적 겪었던 무관심의 기억을 이겨내는 일은 전문가들이 그것을 제2의 탄생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충족되었어야 했던 마음, 감정, 욕구를 채우고, 나 자신을 연결해주는 탯줄을 자르는 고통을 겪은 뒤 다시 사랑받고 스스로를 가치있다고 여길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정서적 무관심으로 인한 결과
트라우마적 경험으로 인한 결과에 관해서는 아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일정하고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대략 일반화할 수 있다.
- 어릴 적 무관심을 겪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다. 어른이 되어도 그 사람은 의심이 많고, 자격지심이 있고,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분노나 슬픔과 같은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워한다.
- 연인이나 사회로부터 무관심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가 행복하거나 사랑 받을 자격이 없으며, 무능하고 해낼 수 있는 것이 없어 꿈을 쫓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자기 파괴적”인 생각들을 하는 경향이 있다.
- 남으로부터 인정과 관심을 필요 로하는 의존증 역시 문제로 부상한다. 보통 주는 만큼 받지 못하고, 남에게 너무 많이 베풀어버리고 끝나곤 한다.
- “감정적 회상”으로부터 고통을 받기도 한다. 살다 보면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물이 한때 자신이 받았던 무관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몸이 굳어버리곤 한다.
이 모든 것은 이전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들이고 해결되어야 한다.
무관심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법
마치 풍선을 놓아주는 사람처럼,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는 자존감을 더 신경쓰고,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치유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말처럼 쉽지 않다.
-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은 어릴 적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이 요법은 마음과 몸을 열어 제대로 된 정서적 해소를 가능하게 한다.
-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감정적 욕구를 소통하는 일의 중요성을 전파한다. 입 밖으로 하는 대화를 통해 상처입은 사람들이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로 인해 더 확실한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스스로를 돌보고, 분노와 증오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 등은 과거의 상처에 구속되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과거의 슬픔을 지울 수는 없지만 마치 흘러가는 개울을 보는 것처럼 마음의 평안감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일은 비록 차갑고 어두운 면이 기저에 있더라도, 마치 흘러가는 깨끗한 물처럼, 그저 나타날 뿐이다. 우리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