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카페치: 노숙자에서 노벨상 수상자로

07 5월, 2020
마리오 카페치는 2007년 유전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천재 뒤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읽어 보자!

마리오 카페치(Mario Capecchi)의 이야기는 그것이 실제로 발생한 진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자료를 연구하고 검토하도록 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 천재의 삶에서 가장 미친 것은 자신이 불운하기도, 또 동시에 운이 좋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마리오 카페치는 1937년 10월 6일 이탈리아의 베로나에서 태어났다. 분명히 그는 행복한 아이가 될 운명이었다. 성공을 향한 그의 길은 명확했다. 아버지인 루치아노 카페치는 전망 있는 비행사였고 어머니인 루시 램버그는 미국 태생이었고 재력을 가진 예술가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 세계를 여행하다가 어머니 루시를 만났다.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로 가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루시는 유럽에서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는 예술가 그룹을 결성했고 소르본 대학에서 시를 가르쳤다. 온 가족의 장래는 밝고 즐거워 보였다.

마리오 카페치 - 길

파시즘의 대두와 카페치가의 비극

카페치 가문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침투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 파시즘이 발발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전쟁을 알리는 드럼이 매일 매일 울려 퍼졌다. 마리오 카페치의 어머니 루시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은밀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녀는 신문을 창간하여 무솔리니의 이른바 ‘인종법‘에 반대하였다.

싸움이 시작되었고 마리오 카페치의 아버지가 소집되었고 대공포 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야 했다.

“운명은 당신을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하지만 떠나기 전에, 아버지는 가족에 대해 염려했다. 아버지는 아내가 당국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악의 사태를 우려한 그는 아내가 체포될 경우를 대비해 볼차노의 일부 농부들에게 돈을 주고 마리오를 돌보도록 했고 농민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계획대로 1941년 게슈타포는 루시 램버그를 체포했고  마리오가 겨우 세 살이었을 때 다하우 수용소로 루시를 보냈다. 그 결과, 약속했던 대로 농민들이 마리오를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비극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리오를 학대했고 결과적으로 마리오가 도망쳤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리오를 돌보기로 한 농민들이 돈이 떨어져서 마리오를 버렸다고  말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사실은 농민들이 겨우 4살인 마리오 카페치를 거리를 떠돌게 두었다는 것이다.

마리오 카페치 - 사진 2

거리의 천재 마리오 카페치

마리오 카페치는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억이 없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거리 한복판에서 혼자 있고 무력한 자신을 본 것뿐이다. 그는 도로를 배회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여러 무리의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걱정할 어른들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바깥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이 아이들은 음식을 훔치고 거리나 피난처가 있는 곳에서 잠을 잤다. 그들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헤쳐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생존 본능은 그들이 역경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마리오 카페치는 5년 동안 집이 없는 노숙자(Homeless)였다. 마리오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몸이 아팠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마리오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마리오는 길에서 기절했고 누군가가 그를 발견해 도와주었다. 어떻게 해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마리오가 발진티푸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이로운 운명과 마리오 카페치

전쟁이 끝났고 마리오 카페치는 어떤 기관이 그를 ‘입양’할 때마다 언제나 탈출할 만큼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사실, 마리오는 몇 번이나 탈출했었다. 그러나 이때는 병으로 인해 몸을 겨우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정이 달랐다.

어느 날, 한 여자가 마리오의 침대로 다가갔다. 마리오는 그 여자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는데 바로 어머니였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무려 18개월 동안 마리오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가 마리오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과 같았다.

어머니는 예전과 달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변해 있었지만 어쨌든, 두 모자는 가슴 따뜻한 재회를 했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마리오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는데 학업에서 뛰어난 학생이었다.

1980년대 초 마리오는 국립보건원 연구원이 되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마리오는 쥐의 DNA에서 유전자를 추출하여 다른 유전자와 교환했다.

2007년 마리오는 마틴 에번스, 올리버 스미스와 함께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에 살던 마를렌 보넬리라는 여성이 마리오가 상을 받을 때 그의 성을 알아보았다. 마리오 카페치는 전혀 몰랐지만, 그녀는 같은 어머니의 딸인 의붓동생이었다.

그녀는 마리오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았고 1년 후에 재회했다. 다시 한번 운은 그의 편이었다.

de la Torre, T. (2009). Adversidad creadora: Teoría y práctica del rescate de potencialidades latentes. Encuentros Multidisciplina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