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크기는 없다

06 10월, 2018

사랑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과 가치는 사랑에 순응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랑에 빠진 한 연인이지, 세상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했는지, 당신은 키가 크고 나는 작고, 당신은 말랐고 나는 아니고…이런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정열은 크기와 상관없고 사람들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인정하자.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누구나 감히 틀을 깨거나 예상 또는 평범한 것에서부터 벗어나면 즉시 지적하게 된다. 우리는 커플 중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으면 여전히 속닥거리는 사회에 있다. 나이 든 남자와 손을 잡고 있는 행복하고 생기발랄한 젊은 여성은 사랑 없이, 속에는 오직 탐욕만이 있을 거라고 느끼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이 정확히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들과 상관없이(보통 얼굴을 보고 말할 정도로 용감하지 않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행복만 느낄 뿐이다. 한 사람이 키가 크고 다른 사람은 키가 작고, 같은 성별인지 아닌지, 또는 그중 한 사람의 무게가 200파운드이고 다른 사람은 엄청나게 말랐다든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연인들은 관습의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쇄빙선처럼 거리를 걸어 다니며 편견의 빙산을 두 동강 낼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사랑에 크기는 없다

용기 있는 사랑은 편견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밀드레드와 리차드 러빙은 그녀가 11살 그리고 그가 17살이었을 때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다. 이들은 매우 어렸고, 이들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아무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50년대, 버지니아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미드레드는 흑인의 딸이었으며 래퍼핸녹 부족의 여성이었다.

반면, 리차드는 조상이 유럽인이었다. 그 당시에는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버지니아 법(Racial Integrity Act)이라는 끔찍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었다. 백인들과 “유색 인종들”을 구분짓는 부끄러운 법이었고, 법에 의하면 그들은 결혼할 수 없었다. 만약에 그들이 결혼하려면 오직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감옥 또는 추방이다.

하지만 이 장애물들이 그들의 사랑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1958년 밀드레드가 18세가 되었을 때,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하였다. 1년 후, 그녀는 임신하였고, 그것을 본 이웃이 주변에 알리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리차드 러빙은 투옥되었다. 1964년이 되어서야, 상황이 절박했던 밀드레드는 로버트 케네디에게 감정에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그는 그녀를 미국시민자유연합(ACLU)과 연결하여 주었다.

3년 후인 1967년, 러빙 사건은 시민권에 대한 전례 없던 승소를 끌어냈다. 대법원은 “이 법령에 구체화된 인종 구분이 모든 주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에 이처럼 근본적인 자유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결하였다.

사랑에는 크기가 없다: 마음이 조절한다 버지니아법

이 이야기가 충격적인 것은 5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충격적인 점은 동성 결혼의 합법화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방향으로 단계를 달성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역사적 상징물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뒤에는 정말 극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비록 믿기 어렵더라도, 인종 및 동성 간 연인들이 여전히 우리 모두의 편견과 침묵으로 판단하는 시선들의 무게로 인한 고통받고 있다는 연구들은 많다.

마음은 모든 차이와 비판을 가린다

사랑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한 말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둘 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매일 한 번씩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연인 의식”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강력하고 행복한 관계를 특징 짓는 네 가지 “Cs”에 투자하여야 한다. 바로 헌신(commitment), 협력(cooperation), 의사소통(communication), 공동체(Community 또는 친밀감)이다.

이는 연인이 비판과 편견의 사회적 장벽을 깨기 위해 빠르게 노를 저을 수 있는 힘을 찾는 곳이다. 정말로 비극적인 일은 충분히 용감하지 않았고, 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않았으며, 거의 두 번은 오지 않을 기회를 놓쳤다면, 임종 때 후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위의 보이지 않는 차이와 비판을 위해 용감해질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 아이들이 “그 나이에 무의미한 일이야”라고 말하더라도 당신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그들은 이상하고, 뚱뚱하고, 혹은 당신과 맞지 않아”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온 남자애나 여자애가 그냥 도망가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에는 크기가 없다: 마음이 조절한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마음에 맞는지, 무엇이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며, 무엇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지를 안다. 우리는 위선의 바다에 있는 쇄빙선처럼, 날기 위해 바람도 필요 없는 다채로운 연과 같이 연인과 손을 잡고 사회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