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이별: 헤어지지 않고 잠적해 버리는 연인
잠수이별, 혹은 잠적이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줄리아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다. 그녀는 거의 1년 가까이 한 남자와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확실한 것은, 둘 사이의 연애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 남자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그가 이별할 생각으로 사라진건지, 아니면 잠시 쉬고 싶어서 그런지 헷갈린다.
혼란스러운 나날의 계속이다. 그에게 전화도 걸고 문자도 남기고 메일도 썼지만 어떤 답장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을 시도해야할지 말아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집안에 일이라도 생겨서 연락이 두절됐는지도 생각해봤다. 혹은 이별할 자신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헤어지게된건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버려진 들판, 선포된 화재.”
-익명-
이 말이 익숙하게 들리는가? 줄리아는 가공의 인물이지만 줄리아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또 당당하게 이별하기보다는 그냥 잠수 타고 이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너무나 흔해진 나머지, 하루아침에 유령이 되어버렸다고 “고스팅(ghosting)”이라는 이름도 붙어졌다. 사람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잠수이별: 이별일까, 사귀는걸까?
잠수이별은 사실 일어나서는 안되는 행위로 간주된다. 연애를 시작하면 둘 다 연애를 유지하도록 노력할 책임감이 있다. 만약 헤어지고 싶다면 상대방이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으로 헤어져서, 서로 자유를 찾아야한다.
이별을 통보하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별하면 양 쪽 모두 상처를 입지만, 특히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비록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더 큰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 모두 연애가 끝났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넘어간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과 거리를 충분히 두고 있으며, 상대방이 그런 자신의 행동을 통해 이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기를 기대한다. 게다가 이별 통보보다는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는 편이 자기 마음은 편해진다.
이는 완벽한 모순이다. 잠수이별은 이별통보가 아닌, 그들의 관계를 끝맺지 않고 영원히 유지하려는 행위나 다름없다. 잠수이별을 당한 사람은 과연 연애가 끝난건지 확신할 수 없어서 이별을 슬퍼하지도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뿐이기 때문이다. 잠수이별한 쪽은 이 상황을 모르는 척 하겠지만, 사실 알고 있다. 그러니 상대방이 이별을 슬퍼하고 다음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관계를 명확히 해야하다.
잠수이별은 슬픔만 더 가중시킨다
비록 더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상대방에게 이별을 알리는 편이 더 깔끔하고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연애가 끝났다면 비록 원치는 않겠지만 그 상황을 수용하게된다. 이별을 슬퍼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게 중요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도 개의치 않고, 의도가 뻔히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한창 잘 사귀고 있다가 뜬금없이 잠수하는 상대방을 보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열렬히 연애하다가 상대방이 사라지면 마치 버림당한 기분까지 든다. 버림 당한 사람에게 이런 식의 이별 통보는 불확실한 상처, 희망의 실패, 분노를 의미한다.
보통 잠수이별을 하는 사람들은 관계를 끝낼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고, 상대방에게 갈 상처를 알면서도 강행한다. 그래도 그들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결국 자기 좋을대로 선택한다. 게다가 잠수이별을 하는 쪽은 관계에 대해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태다. 잠수이별을 하는 사람은 이별이라는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아, 고통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속마음은 그들도 고통받고 있다.
‘고스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미숙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으며, 그들 역시 버림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별을 직면하지 않으려고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무미건조한 사람들은 정작 자기 감정에도 충실하지 못한다. 아마 다음 관계도 망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