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로 인한 고통의 기능

2017-11-20

살다보면 상실로 인한 고통을 느낄 때가 찾아온다. 뭔가를 얻으면 꼭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시간처럼 말이다. 상실감 중에서는 오히려 고통을 완화할 때도, 우리가 관심 없을 때도, 또 맞이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상실이라 하면 주변 사람의 죽음일 수도 있지만 가능성, 꿈과 같이 사물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특히 고통이 생각보다 클 때는 그 고통을 반드시 느껴야만 해결된다.

고통은 슬픔의 표현의 일부이기 때문에 차가운 공허함을 메워줄 따뜻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고통을 공감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상실감의 기능

고통이 늘 공감받지는 못한다

안타깝게도 고통으로 인해 일이 커질 때가 있다. 우선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상실감에 공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연애를 했거나 반려동물을 키운 기억이 없기 때문에 상실감이 어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기회, 혹은 꿈을 잃을 때의 상실감도 공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능성이나 꿈은 개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존재이며, 이만큼 중요한 것은 또 없기 때문에 적절히 비유할 수가 없어 남에게 말해주기도 애매하다. 다른 사람에게 몇 년 간의 노력이 무산되어서 슬프다고 한탄해봤자 그 사람은 노력의 과정을 보지 못했으니 이해할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일일이 다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고통의 가장 첫 번째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엄마

상실로 인한 고통의 세 가지 기능

첫 번째 기능은 고통의 원인을 마주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고통이 싫으면 현실을 부정하면 된다. 대상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처음 몇 달 동안 진행되는 ‘부정’의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상실감을 부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종의 현실 적응을 위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게 장기전이 되어버리면 고통을 느낄 수 없어지기 때문에 딱히 현실 적응이라고 할 수도 없다.

두 번째 기능은 잃어버린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면 상실감을 조금 잊게 된다. 그렇기에 고통을 부정하게되면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애초에 없던 일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부정함으로써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스스로를 더욱 더 부정적이게 생각하고 자기 혐오에 이르게 된다.

고통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고통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 기능은 이야기의 완성을 짓는다는 점이다. 고통을 온전히 누렸을 때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갈 여유가 생긴다. 또 원치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주변에는 공감하고 경청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로 인해 상실감이 남긴 버려졌다는 생각을 주변 사람의 따뜻함으로 달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고통은 잃어버린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을 뒤로하고 추억을 줘서 고마운 마음으로 하늘로 날려보내는 “보고싶을거야”를 적은 편지 한 장이다.

상실 이후 이전과 같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