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방법
우리는 가끔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매일 감정적인 공허함을 느끼며 일어난다. 무슨 이유인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낯설게 느껴진다. 가끔, 자신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무슨 일인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의심과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자신을 익사시키는 단조로움에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나 자신의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실존적인 목적을 찾으려 하지만 존재에 대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한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당신 자신에게 딱 맞는 자리는 없는 것 같다. 당신은 어떠한 직업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존재는 자신의 등에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나서, 세상과 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비관주의가 점거한다. 다른 곳에 왔거나 잘못된 시간에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묻는 가장 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모든 것이 맞는 것 같은 마법의 장소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마법의 장소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종교 사찰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큰 정원이나 숲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해변은 사람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다른 장소이다.
세상에서의 자신의 자리와 다른 사람의 기대
멈춰서 공허함에 대해 생각해 보면, 중요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환경은 자신이 취해야 할 길을 확실하게 자리 잡는 방법으로 조건화시킨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 길을 자신의 길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성공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기대했던 인생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떠한 고통도 영광도 없는 다른 사람의 길을 여행하게 된다. 사실, 다른 목표는 고려조차 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시간이다.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불교의 룬드업 담추 여승은 불교로 도피하기 전에는 성공한 언론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녀는 예전 생활을 뒤로하고 불교의 여승이 되기로 한다. 그 이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그녀를 정말로 행복하게 하였다.
불교의 명상 교사인 라마 린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언젠가 주스 가게를 닫고 불교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로 한 성공한 사업가였다.
지금 하는 일이 정말로 행복한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짚어보자.
세상에서의 자신의 자리, 내면의 공허함 그리고 불교
불교에서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때 느끼는 내면의 공허함을 진정한 불성(Buddha-nature)과의 단절 때문이라고 한다. 불성이란 무엇인가? 해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존재의 궁극적인 상태, 즉 진정으로 행복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을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없애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는 어디에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 상태에 있다. 만약 자신이 평화롭다면, 그 어느 곳도 전처럼 적대적이거나 불편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성취를 누리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다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타이센 데시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