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또 사바또: 아르헨티나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
에르네스또 사바또 (Ernesto Sabato)는 국경 없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글씨와 뛰어난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계는 이 아르헨티나 작가의 말에 반했지만, 그는 다른 분야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사바또는 문학, 과학, 철학에 중요한 공헌을 한 르네상스 사람이었다. 사바또가 탐험하기로 한 모든 분야에서 명성을 떨친 것은 그의 탁월함과 창조성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 글에서 사바또의 생애와 글 그리고 다방면의 유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살아 있는 것은 미래의 추억을 쌓는 것이다.”
– 에르네스또 사바또 –
유년 시절의 에르네스또 사바또
에르네스또 사바또는 1911년 6월 24일 아르헨티나 로하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탈리아의 중산층 가정의 열한 명 중 열 번째 아이였다.
사바또는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로하스에서 보냈지만, 그 후 라플라타로 옮겨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는 라플라타 국립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미래의 아내 마틸데쿠스민스키 리히터를 만났다.
1934년 아르헨티나 공산당은 사바또를 대표로 모스크바로 보냈다. 그러나 브뤼셀에서 도중 하차하시 사바또는 탈출을 결심했다. 그는 파리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한동안 글을 썼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결혼했다.
1937년 라플라타 국립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거기서부터 사바또는 파리에서 연구를 계속하기로 했다. 1938년 5월 25일 그의 첫째 아들 호르헤 페데리코가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사바또는 매사추세츠로 옮겨졌다. 1940년 그는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라플라타 국립대학 교수로 일했다.
사바또는 공학을 가르쳤고 대학원생들과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연구했다.
에르네스또 사바또 – 작가로의 전환
1943년 에르네스또 사바또는 과학 분야를 떠나 예술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는 물과 전기가 없는 코르도바의 목장으로 옮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바또는 여러 잡지와 공동 작업을 했고, 논평도 썼다.
후반기에 사바또는 주로 글쓰기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호르헤 페데리코가 1955년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그 가족은 비극을 겪었다. 그의 아내는 약 40년 후인 1998년에 죽었다.
사바또는 거의 100살까지 살았다. 그는 100세 생일을 불과 55일 앞둔 2011년 4월 30일 폐렴으로 사망했다.
다방면의 지식인 에르네스또 사바또
비록 세계가 작가로서 에르네스또 사바또를 알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평생 많은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다. 다음은 다른 분야에 대한 그의 공헌이다.
- 정치. 사바또는 여러 해 동안 사회주의자로 확인되었다. 사실 사회주의 정당은 그를 대의원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이후 글과 공개석상에서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었다. 대신 개인의 자유와 지방분권, 협력에 입각한 사회를 지지했다.
- 물리학과 수학. 사바또는 파리의 퀴리 연구소에서 원자 방사선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초현실주의와의 만남은 과학연구에서 물러나게 했다.
- 그림. 1970년에 사바또는 이미 작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고 느꼈다. 게다가 시력 문제 때문에 독서와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그는 그림의 세계에 몰두하게 되었다.
에르네스또 사바또는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지식을 중시했으며 인간의 진정한 자유의 원천으로 여겼다. 사바또는 과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몇 가지 철학적 글을 썼다. 그는 과학은 철학과는 달리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바또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의 공통점은 사회, 문화, 정치 과목에 대한 강한 관심이었다. 이러한 관심은 유네스코 사무국장과 외무부의 직책과 같은 매우 권위 있는 직업으로 귀결되었다. 그는 결국 단체와의 불화로 두 직책에서 모두 물러났다.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작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로서 사바또의 작품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의 다양한 지적 활동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비평가들과 팬들은 그의 작문을 칭찬한다. 다음은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중 몇 권을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 터널(Tunnel, 1948년). 이 심리 소설은 실존주의에서 독자를 몰입시킨다. 주인공은 감옥에서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에 관해 쓰고 있다. 비록 몇몇 출판사들이 ‘터널’을 거부했지만, 일단 그것이 출판되자, 알베르 카뮈와 같은 중요한 작가들을 포함한 비평가들은 이 터널을 극찬했다.
- 영웅과 무덤 (Heroes and Tombs, 1961년). 에르네스또 사바또는 50세 때 이 소설을 썼다.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20세기 최고의 아르헨티나 소설로 여긴다. 페로니즘의 맥락에서 설정된 여러 줄거리를 동시에 서술한다. 사바또는 처음에 이 원고를 불태우려 했지만, 그의 아내는 그에게 출판하도록 설득했다.
- 어둠의 천사(Angel of Darkness, 1974년). 이 걸작은 사바또의 좀 더 실험적인 책 중 하나이다. 종말론적 줄거리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중요한 사건 중 몇 가지에 몰입하고 있다.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글과 찬사
에르네스또 사바또는 많은 글을 발표했는데, 대부분은 철학적이다. “페로니즘의 다른 얼굴: 마리오 아마데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그는 에바 페론과 그녀의 추종자들을 변호한다.
많은 중요하고 유명한 작가들은 사바또의 작품을 칭찬했고 그는 많은 잡지와 인터뷰에 실렸다. 그는 또한 그의 글로 상을 받았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 아르헨티나 작가 협회 대상.
- 베스트 외국소설(파리).
- 미겔 드 세르반테스상.
의심할 여지 없이 에르네스또 사바또는 세계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철학, 과학, 정치 탐구는 그를 비교할 수 없는 작가로 만들었다. 이 글이 당신의 책꽂이에 에르네스또 사바또의 멋진 책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도록 영감을 주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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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ato, E. (1998). Abaddón el exterminador. Sudamericana.
Constenla, J. (1997). Sábato, el hombre: una biografía. Seix Barral.
Sabato, E. (2004). Sobre héroes y tumbas. Fundación Biblioteca Ayacuch.
Sabato, E. (2008). El túnel. Ediciones Ur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