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 향수에 젖은 크리스마스

12 10월, 2017

진수성찬. 빈 자리. 와해된 인간관계. 흩어진 가족. 진수성찬과 재회의 날인 크리스마스는 회환, 슬픔, 비통함, 피곤함으로 가득하다. 더 이상 성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가 없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날을 기다리지 않는다.

빈 자리: 향수에 젖은 크리스마스

누군가의 빈 자리 때문에 이제는 크리스마스 불빛을 기대하지 못한다. 어릴적 그토록 강렬하고 즐거웠던 날을 모든게 뒤바뀐 이제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다. 모든 사소한 것들이 마냥 즐거웠던 순수한 그 때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 당시 세상 모든 것들은 해칠 수 없는 마법과도 같았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이 빈 자리와 슬픔만이 우리 마음을 채운다.

왜 슬픔은 즐거운 날에만 찾아올까? 축제 분위기인 이 날은 모든 것이 시작하는 날이다: 파티 준비, 선물 포장, 데코와 메뉴 고르기. 이 모든 기억들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크리스마스의 아름다움이 빈 자리를, 과거의 기억과 추억을 더욱 더 서글프게 만들 뿐이다.

산타모자

24일과 25일에는 누가 있을까? 누가 찾아올 것이며 나는 어디를 갈 것인가?

24일과 25일에는 누가 있을까? 누가 찾아올 것이며 나는 어디를 갈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하려면 반드시 슬픈 빈 자리를 감수해야한다. 더 이상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 떠났거나 죽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멀리 있거나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 더 이상 내 곁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고 이제는 적개심으로 차있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 비록 이제는 만질 수는 없지만 현재의 슬픔에 기여하는 과거에 함께 즐거웠던 사람들.

본래 무감각했고 애써 감추려고 했던 슬픔. 그래, 빈 자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빈 자리를 보면 눈물이 차오르고 영혼이 비통해지고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포옹 생각에 슬퍼진다.

당연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빈 자리에도 포옹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의심 없이 포옹하고, 인정하고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의심이 없다는 말을 한 이유는 비록 빈 자리가 슬프더라도 이 자리마저도 우리의 미소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산타모자를 쓴 여자

역설적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재회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마법이 빈 자리로 인한 슬픔과 충돌한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혹은 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충돌한다. 또 최근에 있었던 다툼으로 인한 빈 좌석과 다른 길을 택해서 오지 않는 이들에 대한 슬픔과 충돌한다.

빈 자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와준 사람들의 호의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물론 와준 사람들이 모두 달갑지는 않겠지만 와준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누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삶은 그 자체의 의미로 따지자면 언젠가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떨어뜨려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눈사람

그러니 누군가는 즐기고 누군가는 무시할 이런 공휴일 동안은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축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잔을 들어 함께 있는 사람들과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을 위해 건배하라. 이로 인해 우리는 와준 사람들로 인해 채워진 자리와 평화를 이루고 동시에 빈 자리에 대한 아픔을 기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