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엽전리술은 무엇인가: 에가스 모니스 이야기

뇌엽전리술은 무엇인가: 에가스 모니스 이야기

마지막 업데이트: 05 2월, 2019

뇌엽전리술은 정신 건강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치료법 중 하나이다. 뇌엽전리술은 1930년대에 에가스 모니스에 의해 발명되었고, 그 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50년대까지 전세계에서 수치료천번의 뇌엽전리술이 행해졌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고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뇌엽전리술은 뇌에서 한두 개 엽의 연결을 절단하는 수술이다. 이는 전두엽 피질을 뇌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 수술을 또한 백질절단술로도 알려져있다.

이 치료법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에가스 모니스가 아니었다. 1890년에 고틀리브 버크하트라는 의사가 6차례에 걸쳐 뇌엽전리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환자 두 명의 사망으로 인해 이 시술을 중단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이 절제술은 전 세계에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모든 이론을 알아보라. 모든 기술을 습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만질 때에는 인간의 영혼이 되어야 한다.”

-칼 구스타프 정-

에가스 모니스, 그리고 그의 의심스러운 뇌엽전리술 연구

1935년 리스본 대학의 신경학자이자 교수 에가스 모니스는 뇌엽전리술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침팬지에게 실제로 이 수술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동물이 더 고분고분해졌다는 것을 보며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겠다고 추론했다.

뇌엽전리술은 무엇인가: 에가스 모니스 이야기 01

과학적이지 않은 이 수술은 수십 년 동안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그 어떤 연구자도, 모든 사례와 모든 환자에 결론을 적용할 수 없었다. 단일 연구 사례가 희귀 질병에 있어 더 넓은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데 큰 공헌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결론이 충분히 확고하지 않다면 이 연구는 일반화될 수 없다. 

이 경우 더 일반화될 수 없었던 이유는 뇌엽전리술이 사람이 아닌 영장류에 행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가스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에가스 모니스는 알마이다 리마라 불리는 신경학자와 함께 작업했다. 둘은 첫 번째 뇌엽전리술을 수행했다. 그 절차는 환자의 두개골에 두개의 구멍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의 뇌를 작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알콜 주사를 피질에 발랐다. 수술 후 두 신경학자는 경과를 관찰했고, 모든 경우에 있어 진전을 볼 수 있었다.

뇌엽전리술은 계속된다

에가스 모니스의 뇌엽전리술에 유럽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하자 많은 신경학자들이 이를 모방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월터 프리먼이다. 그는 외과 의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확경유엽절개술이라고 알려진 치료법을 개발했다

뇌엽전리술

이 미국 의사는 눈을 통해 뇌의 특정 부분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눈을 통해 얼음조각과 비슷한 기구를 삽입해 뇌로 접근했다. 그렇게 5분 만에 뇌엽전리술을 실행할 수 있었다.

프리먼의 이 업적은 거의 ‘산업혁명‘ 수준의 것으로, 그는 시술을 집에서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는 ‘로보토모빌’이라고 부르는 밴을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심리 문제를 다루었다. 그 해 전 세계적으로 4만에서 5만 명의 환자들이 뇌엽전리술로 의해 치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뇌엽전리술의 금지

뇌엽전리술을 받은 환자 중 많은 수가 사망했다. 일부는 심각한 뇌 손상을 겪었으며, 즉시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 년이 지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중 많은 환자들이 식물인간이 되었고, 일부는 인지적 퇴보를 경험했다. 하지만 전리술은 여전히 존재했다. 3분의 1의 환자에게서 증상 개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뇌엽전리술은 원래 어떤 정신 질환도 치료할 의도가 없었다. 대신 모니스의 목표는 환자를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많은 환자들이 불안 장애, 강박 장애, 자살을 시도할 정도의 우울증을 보였다. 의사들은 여러 정신 분열증 환자들에게 뇌엽전리술을 시행했지만, 어떠한 개선도 보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뇌엽전리술은 환자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이것이 환자가 진정되는 이유였다. 많은 사람들이 뇌엽전리술을 희망적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정신 질환 환자들은 정신병원에서 죄수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뇌엽전리술이 많은 이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뇌엽전리술

50년대에 처음으로 항정신병 약물인 ‘소라진’이 발면되면서 뇌엽전리술은 중단되기 시작했다. 발명가는 그 약을 화학적 뇌엽전리술이라 불렀다. 7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뇌엽전리술을 금지했다. 하지만 오늘날에게도 비밀리에 계속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최근 뉴스를 보면 한 시민 단체에서 에가스 모니스의 노벨 의학상 취소를 요구했다. 그의 업적이 인류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해를 끼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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