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끌어 내는 일이 아니라면, 그다지 가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 2017-09-09

때때로 꿈을 이루기 위해 두려움과 타협해야 때가 있다. 당신은 두려움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두려움이 당신을 가로막거나 제한하고 목표를 포기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많은 두려움은 마치 높은 절벽을 오르는 듯한 현기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또한 당신이 아드레날린과 다른 알려지지 않은 감정으로 가득 차게 한다.

그 불확실하고 불안한 감정은 무언가가 진실로 우리를 자극할 때 나타난다. 두려움은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흔들어 빠져나오게 한다. 우리의 삶을 무언가 의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표시한다. 가능함과 불가능함 사이에서 우리를 계속해서 시험한다. 그래서 우리가 목표를 현실로 이루어내도록 말이다.

두려움, 우리를 무섭게 하는 감정

“두려움의 생리”의 저자 제랄 후터는 우리가 자신의 두려움만큼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이 감정이, 그 모든 뉘앙스에서, 우리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발전을 이루어낸다. 두려움은 뇌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는 지적, 감정적, 신체적 태도에서 적절한 상태를 만든다.

우리는 친근하고 보호적인 두려움과 병적인 두려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패닉 발작과 불안증으로 이끄는 두려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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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물리학은 신체와 감정이 현실과 상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같은 반응을 내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히 같은 스트레스의 영향과 다른 생리적인 반응을 겪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겪거나, 예상하거나, 단순히 상상하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신체 내 두려움의 복잡한 회로: 스트레스와 쾌감의 복합

방금 말한 것처럼, 두려움은 외부로부터의 가능한 위협을 알리는 알람이 아닌 숨막히고 지속적인 감정적인 상태를 유발할 때 완전히 부정적인 느낌으로 나타난다. 두려움은 이상 알람과 휴식의 경우에 적응하여 이상 구별할 없을 스스로의 불쾌한 느낌 안에 사람들을 가둔다.

복잡한 과정과, 신체적으로 그리고 호르몬적인 스트레스감각적인 자극으로 활성화된다. 시각과 청각으로 뇌에 정보를 보내는 뇌의 기관은 편도체라고 불린다.

이 기관은 기억에 접속하고 과거에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시상하부에 연결한다. 또한 행동을 제어하는 근육에 전기 자극을 보내는 역할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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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인 면에서, 뇌하수체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는 우리를 깨우고 두 개의 다른 호르몬을 만들어 낸다. 코티솔과 아드레날린 말이다.

아드레날린은 동공을 확장하고 호흡을 가빠지게 한다. 반면 코티솔은 혈관 내 글루코스를 촉진시켜 근육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복잡한 회로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결국 도파민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기쁨과 연결되어 있는 신경 전달 물질로, 두려움, 위험, 승리를 동반한다.

두려움이 멈출 때: 재앙의 신호

두려움과 그 사용법의 복잡한 회로를 알고 난 뒤, 우리의 생존 뿐 아니라 감정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두려움을 느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경고 표시가 그다지 가치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정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위험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격성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을 살펴보자. 그들이 겪은 피해가 감정적으로 해소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일에도 그들의 두려움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도망치기 위해 사용한 자료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목격한 사람들도 이런 두려움을 느낀다.

기쁨을 얻기 위해 두려움을 아군으로

두려움이 적응할 수 있는 표시로 사용되지 못하고 어마어마한 불편을 야기하는 일반적인 감정이 되었을 경우, 이는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트라우마가 발생했을 경우, EMDR 등의 방법은 희망적인 결과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좋은 조언은 전문가를 찾는 것이다.

두려움은 예측의 문제며, 인생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했듯, 이상적인 두려움은 우리가 마치 벼랑 끝이나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의 감정을 느끼며 질문하지 않고 그저 화살표만 따라가지는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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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룰 없을 같지만 사실 이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목표를 마주하고 느끼는 두려움과 같다. 이는 몇 년간의 공부를 필요로 하는 직업을 택할 때 누군가가 느끼는 감정이다. 또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려는 닫ㄹ리기 선수가 느끼는 감정이다. 코티솔이 분비되지만 그들을 막거나 제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두려움을 아군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이를 구체화시켰을 때 훌륭한 성취가 될 수 있다. 두려움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그것이 주는 친절한 암시를 가치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알람을 현실적으로 느끼지만, 똑바로 마주하고 어떻게 그것을 헤쳐나갈 지 아는 것이다. 때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그 경험을 제거해야 한다.

하루의 끝에서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공이나 성취에 대한 기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을 피한다면, 기쁨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삶을 피하는 것이다. 이 감정을 겪고 받아들여라. 두려움이 인생에 흥미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을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