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는 논리가 없다
우울증에는 논리가 없다. 어쩌면 당신의 삶은 그럭저럭 괜찮을지도 모른다. 생계를 꾸릴 수 있을만한 직장, 연인, 집이 있지만 뭔가 부족하다. 이런 결핍으로 인한 슬픔 때문에 별 다른 이유 없이 밤잠을 설친다. 이는 내인성 우울증, 혹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우울증은 내면에서 자라며 마치 우리가 어깨에 세상의 짐을 모두 짊어진듯, 숨쉬기도 버겁게 만든다. 설명하기 정말 어려운 병이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별 문제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렇게 몸을 지치게 만드는 감정을 물리치지를 못한다.
우리를 침대에 묶는 족쇄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뚜렷한 상처가 없지만 고통이 마음을 후벼팔 때. 이런 상황을 겪지만 세상은 이해하지를 못한다. 우울증에는 논리가 없지만 죄책감, 좌절, 불행, 살고자하는 의지를 가져다준다.
영혼 내부의 슬픔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상처를 남긴다. 투명한 상처다. 말로 하기에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
내가 느끼는 고통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이다. 내가 갖고 있는 고통을 설명할 만한 상처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지금 상황을 묘사하기도 버겁다. 우울증은 그냥 나를 찾아와 마음을 덮고, 긍정적인 생각을 막아버린다. 세상이 험난한 장소로 변한 것만 같다. 어떤 움직임이든 내가 쓸모없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나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좋았던 모든 것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 속으로 녹아버리고 나를 잠식한 어둠 너머로는 한 치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러 어지러운 생각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기력도 없다.
내 어지러운 생각 역시 밝은 생각이 아니다. 나는 마치 스스로가 사기꾼이고, 늘 잘못된 선택을 했으며 별 것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미래 역시 어둡다고 느낀다. 세상은 마치 내가 보잘것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해주는 곳만 같다. 심지어 때로는 이 고통을 끝내버릴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럴 힘조차 없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마저도 부질없음을 알고 있다.
우울증이 나를 잠식한 어둠 속에서 살면서 나는 스스로의 폭군이 되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고 괴롭힌다.
기분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내면을 들여다봐라
최악인 사실은 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나에게 있음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은 나를 잠식해오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있는 해답을 찾지 못하도록 저지한다. 보이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처럼.
더 나아가 당신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가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지만 과잉 보호는 좋지 않다. 나는 “불쌍한 것”, “내가 너였다면…”, “네 상황은 알겠지만…” 과 같은 시선의 조언은 필요 없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지만 모두 누군가를 도울 힘은 있다. 가끔,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 있다.
우울증에는 논리가 없다
내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이해지, 과잉 보호가 아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개방적인 마음을 갖고 내 감정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내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격려해라. 전문의가 아니라면 전문의인 척 조언하지 말아라. 우울증은 심각한 병이다. 비록 여기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지만, 굳이 있을 필요는 없다.
친구의 조언, 정확한 치유는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울증은 유전적, 생물학적, 정신학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현되어 나타난 증상이기 때문에 알약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말한 영역을 아우르는 치료법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