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사람들은, 일생에 한번만 기회가 있다고 말하지만,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모든 기회를 마냥 다 잡을 수는 없다. 기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길 원하고, 안정적으로 자동차를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부족한 것에 집중한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영원히 모든 것에 불만을 갖고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싸우거나, 아니면, 자신의 삶의 안정적인 면에만 집착하게 되는, 이지선다의 영원한 딜레마를 겪게 된다. “이것이 내가 꿈꿔 왔던 것이 아니다.”라는 끊임없는 애도를,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그들은 매일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정작 하루 종일 좌절하며 일상을 보낸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이 가세트는, 자신의 저서, [대중의 반란] 에서, 전문화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모든 남성과 여성은, 각기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면모와 능력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듯이, 세상 전체를 보지는 못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쩌면, 너무 많은 기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성이 마비된 건지도 모른다. 단지 더 나은 것만으로도, 인간의 편안함을 포기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비되어버린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유일한 기회를 잡아내고, 두려움을 무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회가 드디어 바닥났을 때가 종종 있다. 이 때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바로, 앞으로 다가오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용과 거부의 차이
우리가 정말로 더 나은 삶의 태도를 원한다면, 먼저 중요한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해보아야 한다: 수용과 거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비슷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기름과 물처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수용은 변화의 첫 걸음이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갈 곳을 좋아하건 아니건, 전혀 관계없이, 우리가 가야할 곳을 반드시 정하는 것과 같다.
수용은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을 때, 우리가 적응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기도 하다. 이 의미에서, 우리의 과거를 인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의 경우, 다리를 잃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삶에서 반드시 해야 할 큰 변화화와 재적응의 과정이다. 또한, 당신의 과거도 당신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큰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포기는 좌절과 절망과 관련이 깊다. 이 좌절은, 우리를 보통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싫어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살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천 가지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것도, 완벽히 나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거부한다. 우리는 불평하고, 고통받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고통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설령 지금이 이상적인 상황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물론, 다리를 잃은 사람의 경우, 이상적인 대안은 다리를 되찾는 것이겠지만, 불행히도, 현재의 의술로는 완전히 되찾을 수는 없다.
기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모든 이상적인 기회가 모두 떨어져 버리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최선의 선택지가 명확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을 재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고르는 선택이 우리의 고통을 덜어 준다면, 그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고려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만일 우리가 지쳐서 동기 부여가 될 만한 게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 그 때문에, 변화에는 노력이 필요하며, 우리는 그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매일매일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우리의 노력에는 대개 보상이 따르지만, 우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개념을 다룰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동기를 갖고 있지 않거나, 잃을 수도 있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기대를 약간 낮춰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길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더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계획을 세우자.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현실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지 마라
남들과는 다른 뜻밖의 길을 걸었고, 그런데도 자신이 행복하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즐기며, 일시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말하는 부정적인 것들은 무시한다. 어쨌든, 이러한 의견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섣불리 판단하고, 그 위에 올라서길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표하는 것들이다.
이 용감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넘겨받은, 시큼하기 짝이 없는 레몬들로,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것처럼,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돌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주연으로서, 자신의 삶이 주는 작은 즐거움 하나하나도 즐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과, 자신의 삶을 영원히 비난하는 삶은, 온전히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온전한 삶이라면, 모두 중요한 법이지만.
이 세상에, 그 자체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을 가치없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다. 완벽에 대한 우리의 탐구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운 좋게도, 우리들은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실 여유가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행운을 갖고 있다. 미래를 만들어가며, 현실을 누리는 것이다.
그들은 완벽한 기회를 찾지 못한 끝에, 자신들이 가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찾아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태도를 찾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