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배 이야기가 광기에 대해 주는 3가지 교훈

2019-05-31

바보배 이야기는 르네상스가 도래하던 시기인 1486년 처음 등장했다.  제바스티안 브란트란 사람이 ‘바보배'(독일어:Das Narrenschiff, 라틴어: Stultifera Navis)란 장문의 시를 적었다. 이 시에서 저자는 나라고니아라고 불리는 장소로 항해하는 111명 광인의 여행에 대해 적었다.

엘 보스코라고도 불린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그 묘사에서 보다 직접적이었다. 그는 ‘바보배’란 제목의 그림을 통해 정신이 온전치 않은 일단의 남성과 여성들의 순례를 그렸다. 그들은 미지의 장소를 향해 항해하는 중이다. 이것이 바보배 이야기의 핵심이다. 집단적 사고에 일치하는 않는 이들은 배 속으로 던져져야만 했다. 이에 그들은 나라나 정착할 땅이 없이 방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여행은 끝도 없이 정처 없는 여행이었다.

“광기는 야생에서 발견될 수 없다. 광기는 사회의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기는 광기를 소외시키는 민감성의 양식 및 광기를 배척하거나 억류하는 혐오감의 양식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셀 푸코

미셀 푸코는 자신의 책 ‘광기의 역사(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에서 바보배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중세시대의 옛 문서 중에는 “바보들”을 화물로 실은 배들에 대해 언급한 문서들이 있다. 이 이야기들에 따르면, 이 배들은 어떤 항구에도 정박이 허가되지 않았다.

바보배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광기의 개념, 광기에 대한 사회의 반응 및 대응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이야기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점이 있다.

1. 사회는 광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구하려한 최초의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이는 애매모호성이 가득한 일이었다. 광기는 악령에 사로잡힌 상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는 이를 체액의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 적절한 식이요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마에도 비슷한 시각이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광기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 광기는 귀신들림의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한 그 시대의 일반적인 치료는 배척과 분리였다.

사회는 이성적이지 않은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이들은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푸코는 광기가 확립된 질서에 대한 위협이므로 두려움을 야기하고 격리를 낳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바보배 이야기가 그리스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바보배는 ‘공공의 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배척이었다.

2. 바보배 이야기와 그 잔인성

다른 환자들의 경우와 달리, 광인에 대해서는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정신병은 나병이나 결핵처럼 전염성이 없음에도, 타인으로부터의 거부를 촉발한다. 이 거부는 역사상 종종 잔인한 행위를 낳곤 했다.

바보배 이야기는 정신병을 다루는 참을성 없고 잔인한 방법이다. 그러나 격리는 광기를 다루는 ‘덜 극단적인’ 방법 중 하나일뿐이다.

훨씬 더 잔인한 관습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고문을 당했다.

바보배

중세시대 ‘바보’들은 화형당하고, 매 맞고, 종종 동물 취급을 당했다. 사람들은 “광기의 돌”이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정신이상자의 뇌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믿었다. 많은 광인은 신체가 훼손당하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와 정신이상자들은 감금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바보들’은 이제 더 이상 바보배 이야기에서처럼 끝없이 방랑하는 배로 보내지지 않았다.

3. 광기의 개념은 불명확하고 부정확하다

광기의 명확한 개념은 여전히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중세와 근대에는 정상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을 정신이상자로 여겼다. 여기에는 인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 반항적인 사람, 창녀, 기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함됐다.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며 상당히 놀랐을지 모른다. 아마도 당신은 우리가 이제 진보적인 시대를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도 이전 시대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오늘날의 사회는 집단적인 망상만을 수용한다. 예를 들어, 브랜드가 한 개인을 타인보다 우월하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의류를 입으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믿는다. 이런 사고는 정신이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개인이 무언가 남과 다른 색다른 일을 하면, 그 사람은 정신이상자로 여겨진다.

정신병은 여전히 잔인한 대우를 받고 있다.

때로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사람이나 환각 희생자의 가족 안에서조차 무감각함이 싹트기도 한다.

여전히 정신이상을 다루는데 배척이란 수단이 쓰인다. 바보배 이야기에서처럼 정신 이상을 가진 많은 사람은 그 자신의 운명 줄에 맡겨진다.

우리는 이런 이들을 전 세계 수많은 도시의 노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또 끊임없이 정신병원을 들어갔다 나간다 한다. 그 누구도 그들을 돕고 격려하고자 충분히 애쓰지 않는 가운데 말이다.

사람들은 정신병을 격리나 은폐 같은 방식으로 다룬다. 마치 카펫 밑으로 밀어 넣으면 사라지기라도 할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