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
사랑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연습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일이다.
우리의 집단적인 상상에는 “진정한 남자”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구분들이 담겨있다. 어떤 것들은 부정적이고, 어떤 것들은 보다 더 긍정적이다.
“유년기 시절의 사랑은 다음의 원칙을 따라간다: 그들이 사랑해서 나도 사랑한다. 더 성숙한 사랑은 다음의 원칙을 고수한다: 내가 사랑해서 그들이 사랑한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네가 필요해서 너를 사랑한다. 성숙한 사랑은 말한다: 너를 사랑해서 네가 필요하다고.”
–에리히 프롬(Erich Fromm)-
두 애인 사이의 열정은 가끔 어떤 억제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초반에는 재밌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그런 열정이 독한 집착이 될 때 두 사람은 스스로의 이야기 속의 사형 집행인이 될 수 있다.
두 애인 간의 열정은 감옥과 같은 존재로 변할 수 있다. 이런 궤도가 극으로 달할 때 우리가 영화나 책에서나 보던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가 된다.
열정이 질투심과 책망의 소용돌이가 될 때, 생산적이고 환상적인 로맨스는 잊혀진다. 이는 불행하고 쓰라린, 쓸모 없는 관계로 향한 길을 만든다.
할리우드 영화는 공존이 진정 어떠한지, 또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어떤지에 대해 아주 조금 보여준다. 공존을 할 기회를 가진 운 좋은 사람들에게 그런 관계가 마냥 환상적이고 흥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그러나 “진실되고 검열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의 도덕적인 면을 심사숙고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를 보기를 추천한다. 이 영화는 진실로 친밀감과 상호 존경으로 이뤄진 사랑이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강요하지 않고 단지 공유하는 남자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진정으로 본인의 삶을 나누고, 여자를 알고 상호 매력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은 오늘날 아주 저평가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쟁 영웅, 혹은 전장의 피 튀기는 장군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영웅과 지배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발견하기 쉽다. 하지만 스스로가 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원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이성이라는 선물 덕분에 이런 사람들은 그저 발전하기를 원하지, 지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이러한 독특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 누구든지 마음을 빼앗는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꿈과 같은 사람으로 남는다.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들…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들…은 늘 가치 있는 사람들이다. 공간과 시간에 따라 그들의 친절함이 늘 인정 받지는 않겠지만, 그들을 알 수 있던 즐거움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발자취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여자를 진정 사랑하는 남자는 자만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를 유혹하는 데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유혹 당할 때 느끼는 쾌락을 즐긴다.
그들은 여성의 명성에 매료되지 않는다. 종종 그들은 그녀와 지내는 시간으로 인해 얻을 행복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여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과 그 노력으로 인한 결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종종 사랑을 쟁취하려하는 여자인 친구들을 돕는다. 그들은 두 사람의 행복이 소유물이나 외모가 아닌 공유된 가치로부터 발견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사랑에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열정의 절벽을 바라보며 어리석음을 얻는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포기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남자들은 또 안정성과 일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로와 맞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의 자유 의지로 인한 조건이 따라온다.
의심할 여지 없이, 여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상처 입히지 않고, 압박하지 않고 얽히지 않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사랑한다. 예술적이게 그들은 사회가 우리를 질식시키고 부담시키려하는 무기들을 느슨하게 만들고, 곧 그들과 함께 있는 것 외에는 바라지 않게 된다.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들은 많으며 그들은 보호 받고 마땅한 만큼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