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은 성숙함에 대한 시험

· 2017-09-26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으로부터 감정적으로 회복되는 필요한 시간을 비탄이라고 부른다. 이를 그 관점에서 보는 것은 매우 흔하지만, 우리는 매일 비탄과 마주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이 비탄은 조금 덜 놀라울 수 있지만, 훨씬 더 빈도가 잦다. 이렇게 우리는 다양한 이별과 그 이별이 인생에 더하는 이야기로부터 나오는 감정을 통해 자라고 성숙해진다. 곧, 비탄은 성숙함에 대한 시험이다.

오늘은 다른 종류의 비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별을 경험할 겪는 비탄 말이다. 두 사람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이전의 관계를 끝내고 겪는 과정이다. 무력하고, 힘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이 과정 말이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다른 종류의 비탄과도 매우 흡사하다.

관계적 비탄의 단계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적 비탄을 겪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무도 같은 방식으로 이를 겪지 않는다. 당신이 그 결정을 내린 쪽이거나, 상호적인 결정이었거나, 배신당했거나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으로, 우리는 우리 모두가 겪는 다양한 과정을 생각해 있다. 그 단계나 강도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말이다.

이별을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통으로부터의 방패를 만드는 것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일어난 일을 부정하는 것이다.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밧줄로 눈이 가려진 남자와 흰 새

점점 일어난 일을 생각하게 될수록, 방패가 더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우리는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는 분노와 격노로 이루어진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싸움이다.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이제는 명백해 보이게 된다. 따라서, 당신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잘못했지?” “그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있지?” “아마 이건 실수였을 거야.” 등 말이다.

여기에서 당신은 자신의 핑계와 완전히 동화되어 그 이상적인 존재를 상대방보다 더 기다리게 된다. 또한, 이별관련된 현실적인 슬픔이 시작된다. 맞서 싸울 상대가 없기 때문에 내면적 싸움은 끝났다. 그 어느 단계보다 감정적인 고통은 여기에서 가장 강해지지만, 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으로 작용한다.

시계를 들고 가는 여자

슬픔 너머로, 인생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의미를 회복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은 존재하고 당신도 알고 있지만, 당신은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는 바꿀 수 없는 객관적인 현실이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 상황으로 인해 그들은 당신의 예상을 넘는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상황이 아마도 최선이었을 거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이제 마지막 단계를 위한 준비가 되었다.

이제 최고의 순간, 가장 실용적인 부분이 시작된다. 여기서 당신은 뒤돌아보고 상황으로부터 교훈만을 얻는다. 함께 경험했고 새로운 가치를 가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낸 모든 상황으로부터 말이다.

갑자기 당신은  일어난 일이 그렇게 파괴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당신은 현명해졌고, 상대방에게 행운만을 빌어줄 있다. 상대방이 적이 아니라, 인생의 긴 여정에서의 동반자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맨발로 걷는 여자

비탄의 마지막 목표는 배움이다

결국 이것은 인생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으로부터 배우고 경험하는 여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던지, 최선의 방법으로 말이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고, 최소한 하나는 좋은 쪽이다. 책 “여자없는 남자들”의 한 부분에서, 무라카미는 이 종류의 비탄의 마지막 단계를 완벽하게 설명했다.

어려웠어?

뭐가?

하나의 반쪽이 되는 익숙해졌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는 말이야.

가끔은.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젊을 때는 그것처럼 어느 정도 어렵고 슬픈 시간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 말은, 성숙해지기 위한 과정으로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

이건 나무같은 거야. 키가 크고 튼튼해지려면, 험난한 겨울을 겪어야 하지. 날씨가 항상 따뜻하고 좋기만 하다면, 나는 나이테 하나도 가지지 못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