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받기: 호혜성의 원칙

· 2017-02-21

그 어떤 것도 받는 것을 예상하지 않고 무엇을 준다면, 그 행동은 이타심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언제까지 받지 않고 주기만 해야 할까요? “내가 주는 것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삶의 법칙을 기억하라. 오늘 당신이 한 일로 인해 아무것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일 그것이 돌아올 수도 있다.

호혜성은 어떻게 적용되는가?

호혜성(reciprocity) 가장 중요한 기반은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과거에 호의를 되갚기 위한 의도에 있다. 이를 더 잘 이해하려면, 더 멀리까지 되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나누어야 한다. 도구, 음식 또는 거주지에 관한 지식에서부터, 사람은 항상 몇몇 특별한 소수의 너그러움으로 인해 살아남았다.

이는 다행히 원시인 때부터 계속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주면 본능적으로 “채무의 감정”느끼게 된다.

steps

그러나 그 이상으로, 우리는 최대한 빨리 그러한 부채를 더 나은 방식으로 갚을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누군가에게 빚을 졌을 느끼는 “죄책감”이용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어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유도된” 호혜성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특정한 용어가 없다. 이 말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도와줄 그들로 인해 빚을 진다는 기분을 들게 하려는 이유만으로 도움을 준다는 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심하라!

죄책감을 이용한 번째 사람들은 크리슈나 신도들이다. 그들인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꽃을 나눠주고, 그들의 재단을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미 꽃이라는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기부금을 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오늘날까지, 이 기술은 책, 음료, 또는 펜 등 다른 물건들에도 적용된다.

다른 영역까지 시야를 넓혔을 때, 80년대의 가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방금 만난 사람을 술자리에 초대하는 것은 대부분 성적채무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고 한. 이는 21세기에서는 비논리적이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지만, 4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reaching out

우리가 받는 것은 주는 것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주고 받기”에 좋은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는가?

몇몇 사람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 답례를 바란다. 이는 무언가 물질적인 선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주는 것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뿌듯함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늘의 “좋은 행동”했을 때,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언가 답례를 기대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여태까지 한 행동 모두를 들이밀 순간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고, 좀 더 신비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행동에 대한 보상을 내려줄 커다란 힘인 신, 우주, 카르마 등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이 돕기를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완벽히 이타적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매일 우리의 형제를 생각하고, 그들을 돕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노력하는 은 더 드문 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권하는 대신, 일상사소한 을 더 신경쓰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굶을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다는 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양보하면서 시작할 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노인이 먼저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어린 아이의 신발끈을 묶어주고, 가족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연인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으로 말이다.

당연히 당신은 다른 사람의 행복, 감사, 애정 등의 답례를 받을 것이다. 답례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