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비판: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승부

24 2월, 2018

때때로, 인간의 비판과 판단은 건설적이고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파괴적 비판 혹은 비난의 경우, 남을 보완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서, 매우 위험하다. 어떤 이유로, 판단이나 비판, 비난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면, 불안정한 면을 투사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든 ‘결점’을 지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시점에서, 이 사람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우리가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누군가비난하는 행위는, 너무 평범하고 흔한 것이 되어버려, 많은 TV와 라디오 프로그램(특히, 몰래 카메라로 불리는 계열)의 레드 오션일 정도로 흔한 소재가 되었다. 일반적인 농담거리나, 가십거리가 되기도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 걸까? 왜 우리는 이런 비난을 하는 걸까?

파괴적 비판: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승부

비판과 비난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이러한 행동 양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판단하는, 주된 이유 중 일부를 다뤄 보기로 한다.

모든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단지, 상상력의 문제일 뿐이다.

1. 열등감

열등감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도록, 우리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다른 때에는 우월감이 동기 부여 요소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위에서 권위를 가지려 하는 것은, 자신의 열등감에 대한 변장일 뿐이다.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노력하는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초점을 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이 강력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우월감을 느낄 필요성을 만족시키려 한다.

“사람들이 팔에 근육이 없으면, 근육에 혀를 집어넣어 보완하려 한다.” – 미겔 델리베스

거울을 보는 여자

2.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결점을 스스로 반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비판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때, 우리는 문제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속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결함이 있으며, 우리 자신보다 더 나쁜 결점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같은 것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비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싫어하는 것을 반영하려 한다.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정을 비추곤 한다. 사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거부감과 비난을 촉발시킨다. 이 현상을 ‘자기 부인’이라 한다.

남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가장 큰 비난의 원동력이 된다. 자신들이 누군가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면, 그들은 비판을 한 방어기제로서 사용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자질을 깎아내리고, 그 결점을 부풀린다.

이 사람들은 자기 비판을 하지 않으며, 그들의 에너지는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방향으로 사용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스스로 멀리한다.

3. 그룹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관계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그룹에 속하게 하기 위해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비판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비평은, 우리의 그룹의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우리가 그 그룹의 일원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경우, 비난은 대상의 집단에 대한 자신의 집단의 태도에 의해 중재될 것이다. 그룹 내에서 격려 받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 그만큼 자주 일어날 것이며, 그 강도도 높아질 것이다. 반면, 그룹의 구성원이 비난을 싫어한다면, 그 그룹의 일부처럼 느껴지려 하는 사람은, 다른 행동으로 바꿀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무언가의 전문가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우리의 권위의 위치를 재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이 자존심이 부족하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존경 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4. 복수와 겁쟁이

비난은 누군가에 대한 복수에 기초할 수도 있다. 어떤 미해결된 상황이나, 또는 용서하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그 비난은 모욕이나 처벌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좌절감, 분노 또는 상처를 덜어내기 위해, 무작정 비난한다.

“비난은 우리가 분노를 터뜨리는 곳이자 방식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우리는 비난한다. 그저 분노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호르헤 카시에리

파괴적 비판: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승부

복수의 모습을 한 비난은, 우리의 복수를 위한 조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때로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친구들과 멀어지게 만들거나,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어, 비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5. 자기애와 이기주의

우리가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때때로, 우리의 나르시시즘과 같은 감각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에 비난하며 불평을 하고, 남을 과소평가하고,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대신, 그들을 칭찬하자. 한 달 안에, 당신은 당신 자신 안에 거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 알레한드로 샤번

비난에 대한 태도

의심의 여지없이, 비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비난은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삶에 나타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타마테스가 설명한 것처럼, ‘3분의 3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삼분의 일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또 다른 삼분의 일은,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를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 번째 범주의 비평가들이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윈스턴 처칠은 비판의 고통을 육체적 고통과 비교했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거절, 비난 및 굴욕은, 모두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뇌의 영역과 동일한 영역에서 처리된다고 한다.

“비평가들이 당신에게 던지려고 하는 돌들로, 당신은 기념비를 세울 수 있다.”칸트

멀리 떨어져보자

이 유독한 역병과도 같은, 파괴적인 비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중요한 지침이 있다. 부정적인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부정적인 존재는, 다른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움

가장 현명한 일은 바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에 동조시키려 할 때 더욱 그렇다. 이 유형의 사람과의 상호 관계가 우리의 정서적 및 사회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핵심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에 의해 오염되거나, 혹은 자신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때, 개인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난은 그것을 받는 사람보다 그것을 주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이 말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이다.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라.”엘버트 허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