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 상실에 직면하기

이번 글에서 소개할 작품에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슬픔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 상실에 직면하기

마지막 업데이트: 26 3월, 2024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원제:  Collateral Beauty)”는 2016년에 나온 영화로 데이비드 프랜켈 감독이 감독했다. 이 영화는 많은 기대를 받았고 출연진들도 놀라웠다. 유명한 배우 몇몇으로 에드워드 노턴, 케이트 윈슬렛, 헬렌 미렌, 윌 스미스 그리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대와 배우들의 놀라운 자질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에 불과했다. 이는 눈물과 감정적 대화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표면에 불과하다.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의 영화이지만, 극도로 강제된 감상주의로 전락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헐리우드 영화이다. 뉴욕의 휴일 설정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가족 전체와 함께 보는 크리스마스 영화와 비슷하게 만든다.

아이디어는 흥미롭다. 그리고 그 영향은 명백히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롤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는 6살짜리 딸이 죽은 후 우울증에 빠진 성공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동료와 친구들은 그를 돕기 위해 세 명의 배우를 고용한다. 그리고 그들을 그의 삶에 끼어들게 한다. 그들은 세 가지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연기하게 되어 있다: 사랑, 죽음 그리고 시간. 영화의 이 부분은 인생의 풍자여야 하는 부분이다. 이는 우리가 우울증에 직면하는 두려움을 보여준다.

영화의 달콤함, 예측 가능한 줄거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한지는 제쳐두도록 하자.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라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매우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는 비판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영화의 메시지와 영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심리적 교훈을 살펴볼 것이다. 

영화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에서의 상실

영화는 윌스미스의 캐릭터인 하워드 인렛의 연설로 시작한다. 그는 홍보 산업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 중 한명이다. 그는 모든 인간을 연결하는 세 가지 – 사랑, 시간,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 부분에서 그는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더 많은 시간을 갖기를 바라며, 죽음을 두려워한다”라고 말한다.

머지않아, 영화는 아주 다른 현재로 이동한다. 거기에서 하워드는 직업, 친구들, 삶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6살짜리 딸을 잃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거의 항상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딸의 죽음이 그의 삶을 방해하는 우울증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헤어진다. 이는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보통 여기서 역할을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잘 대처할 수도 있고, 그들 서로를 비난할 수도 있다. 그 중 한명은 고통을 절대로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 상실에 직면하기

슬픔의 과정

슬픔의 과정은 이를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극도로 힘든 것이다. 아이를 잃었을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진다. 그들은 여러 단계를 거쳐 마침내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고통에 완전히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으로 인해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워드의 경우는  그가 극도의 우울증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 부정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은 그의 감정 상태를 걱정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 언제나 충반한 삶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무너지고 인생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그들이 하워드를 돕기로 결정한 이유이다.

물론 그들은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 때문에 도운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하워드가 사랑, 죽음 그리고 시간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탐정을 고용한다. 이 세 가지는 영화 초반에 그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이다.

그것을 보면서, 그들은 세 명의 배우를 고용하여 이 세 개념의 구현을 연기하기로 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그의 정신 건강이 일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동시에 하워드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알아채도록 돕는다.

영화 속 크리스마스 배경도 중요하다. 이는 사람들의 감정이 흥분하는 때이다. 시간을 돌아보고, 과거의 유령들을 위한 시간 (디킨슨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더 이상 당신 곁에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때이다.

주인공 세 명

우화 그리고 죽음의 의미

하워드의 친구들도 그들만의 고통을 겪고있다. 그들에게 남은 단 한가지, 직업은 위험에 처해있다. 위트는 최근 이혼을 했고, 그의 딸은 그를 경멸한다. 그 또한 인생에 중요한 것을 잃었다.

클레어는 평생을 일에 바쳤다. 그녀는 가정을 꾸린 적이 없고,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너무 늦은 것을 걱정한다. 사이먼은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제 막 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화적 캐릭터(사랑, 죽음 그리고 시간)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위의 캐릭터들과 깊은 연관성을 만들어낸다. 죽음은 사이먼과 연결되어 그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사랑은 그의 딸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위트와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클레어와 연결된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하워드의 줄거리, 그리고 받아들임을 향한 그의 이야기로 섞여 들어간다. 그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집단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Collateral Beauty.

죽음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인생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후안 데 발데스 레알이 그린 피니스 글로리아 문디 (Finis gloriae mundi)라는 그림이다.

작가는 한 무리의 시체들이 부패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교의 호화로운 관은 그 뒤의 텅 빈 관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그림의 꼭대기에 하늘의 손이 신의 심판을 상징하며 저울을 쥐고 있다.

영화의 메세지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는 우리에게 딸의 죽음에 대처해야 하는 성공한 남자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시작부터 죽음은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재미있지만 않은 사실은 무엇일까: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윌 스미스는 그의 아버지에게 남은 여생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죽음이 언제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그의 딸이 인생을 살아보기도 전에, 그보다 먼저 죽게 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또한 우리가 시간을 측정할 수는 있지만 단지 지각일 뿐이라는 것도 보여준다. 우리는 시간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유가 있다.

그리고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우리 주변 모든것의 에너지가 된다. 슬픔 조차도. 이는 영화가 당신으로 하여금 보고 이해했으면 하는 것이다. 

“어린이의 죽음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효도르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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